- 삽교천 막아 1964년 인공호 조성 예당평야 농업용수 공급원 활용돼
- 어족자원 풍부 낚시터로도 각광 추사 고택·최익현 묘 등 볼거리도 풍부
- 예산군 지난 2009년 슬로시티 지정 느림 철학 강조하면서 발전 도모

차령산맥과 차령에서 갈라진 가야산 지맥 사이 예산과 당진의 벌판을 의미하는 예당평야는 삽교천을 젖줄로 하고 있다. 삽교천은 본래 우리말인 '둘째 혹은 다음' 또는 '작은'이라는 의미를 가진 "버금"과 냇가라는 '내'의 합성어 ‘버그내’라고 하는데, 지금의 당진군 우강면의 옛 이름 범근내(泛斤乃) 혹은 범천(泛川)등도 우리말의 한자화 과정에서 생긴 지명이다.
그 삽교천은 조선시대 홍주목과 공주목 산하 군·현의 조세를 한양으로 실어 나르던 남창(南倉; 지금의 당진군 우강면 창리)을 비롯하여 덕산현의 해창(海倉; 지금의 당진군 합덕읍 합덕리 창말), 천안 진종창 등이 몰려 있어서 범근내포(면천)는 내포의 중심지이기도 한데, 조선중기 실학자 이중환(李重煥 : 1690~1756)은 택리지에서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서산·당진·해미·면천·태안·덕산·대흥·홍성·보령·결성 등 10개 고을은 밀물 때에는 서해바닷물이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오지만, 썰물이 되면 배가 뜨지 못하는 ‘내포(內浦)’라고 불렀으며, 내포는 비옥한 땅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물론 해산물까지 풍부해서 가장 살기 좋은 고을로 손꼽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당 저수지 낚시터.
예당평야의 중심인 예산군은 조선시대의 예산현·대흥현·덕산현 등 3개 고을이 합쳐진 지역으로서 먼저, 지금의 대흥면 일대는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된 후에도 흑치상지 등이 3년 동안 부흥운동을 벌이던 임존성 지역이다.
이곳은 신라의 삼국통일이후 경덕왕 16년(757) 임성군(任城郡)으로 바뀌면서 청정현(靑正縣; 지금의 청양), 고산현(孤山縣; 지금의 예산읍)까지 관할하다가 고려 태조 때 대흥현이 되었는데, 대흥현은 조선 숙종 7년(1679) 대흥군으로 승격했다.
또, 지금의 예산읍 지역은 신라의 삼국통일 후 고산현으로서 임성군의 영현이었다가 고려 태조 2년(919) 예산현(禮山縣)으로 고쳐진 이후 지금까지 그 지명을 이어오고 있고, 본래 백제시대 금물현(今勿縣)지역이던 덕산현은 신라의 삼국통일 후 경덕왕 16년 금무현(今武縣)이라고 고쳐서 이산군(伊山郡; 지금의 덕산 부근)의 영현이었다.
조선 태종 5년(1404) 덕풍현(德豊縣)과 이산군을 합치면서 덕풍과 이산에서 각각 한 글자씩 취하여 덕산현(德山縣)이라고 했는데, 일제강점기이던 1914년 3월 덕산군, 대흥군, 공주군의 신상면 일부· 신창군 남상면 일부· 홍주군 일부·면천군 일부를 흡수하여 지금의 예산군이 되었다.

예당댐 전경.
예당평야의 안정적인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서 1952년 12월에 착공하여 장장 12년만인 1964년 서해바다로 통하는 삽교천을 막은 예당저수지가 준공되었는데, 저수지는 동서 211m, 남북 811m, 저수지 둘레 40km가 넘고, 댐은 높이 13.3m, 길이 814.5m의 규모이다.
이렇게 예당평야의 젖줄이자 국내 최대의 인공저수지가 된 예당저수지는 댐 건설과정에서 예산군의 대흥면, 광시면, 신양면, 응봉면 등 4개면이 많이 물속에 잠겼으며, 특히 대흥면 지역은 70%가 물속에 잠겼다고 한다.
지금의 저수지 주변 마을들은 예전에는 산간 고지대였던 곳들인데, 이제는 상수원 보호라는 개발제한조치로 발전이 정지되어 있기도 하다.

사실 가난과 질곡에서 살던 우리는 1960년대 이후 성공적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덕택으로 불과 한 세대 만에 세계10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반면에 서양사회가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장해온 자본주의를 불과 한 세대 만에 성취한 압축 성장(telescoped revolution)의 부작용도 적잖게 안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미 산업사회가 정착된 유럽에서도 새로운 정신운동이 조용히 전개되고 있는데, 1999년 이탈리아 중북부의 작은 마을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te)에서 급격한 과학문물의 발달한데 편승한 인간들의 조급한 심리와 행동에 대한 반발로 느리게 살기(slow movement), 느리게 먹기(slow food)를 주장하는 슬로시티(slow city)운동이 우리나라에도 파급되고 있다.
슬로시티 운동은 자연, 문화, 인간ㆍ생물 간의 조화와 포괄 통섭을 존중하여 인간사회의 진정한 발전과 오래 갈 미래를 위한 자연과 전통 문화의 보호에 목표를 삼으며, 그 실천방법으로 본래의 자연환경 보존, 전통문화, 주2회 휴무는 물론 하루에도 오후 3시 이후에는 업무가 아닌 자기 개인의 시간을 갖도록 권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패스트푸드(fast food)가 아닌 조악한 식사와 조리법을 통한 슬로푸드(slow food)를 강조하는 등 느림보의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전남의 신안, 완도 등 섬 지역과 장흥군과 담양군이, 그리고 2008년에는 소설가 박경리의 장편소설 토지의 배경이 되었던 경남 하동군 등 5개 군이 슬로 시티에 가입했는데, 2009년 예산군이 세계 121번째, 그리고 한국에서 6번째 슬로 시티로 지정받았다

왼쪽부터 조각공원과 의좋은 형제상.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야산 줄기 아래 예산군의 수덕사, 덕산온천광광지구 등이 개발된 것과 달리 오랫동안 개발이 제한되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예당저수지 주변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최고 명필로 추앙받는 추사 김정희의 고택, 잘 보존된 500년 향교 등의 전통문화, 그리고 독특한 지역공동체분야에서 슬로시티 선정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예산이 가장 슬로 시티다운 점은 예당저수지 주변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할 것인데, 우선 예당저수지는 예당평야에 안정적인 농업용수의 공급원이라는 사실 이외에 풍부한 물과 많은 물고기들로 낚시를 처음 배우는 초보자들의 훈련소라고 할 정도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또, 저수지 주변은 일년열두달 그치지 않는 낚시꾼들과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려는 이들로 드라이브코스는 물론 저수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카페가 즐비하다.
무엇보다도 예당저수지 상류인 대흥면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된 후에도 3년 동안 부흥운동을 전개하던 역사적 유적지인데, 임존성 터인 봉수산은 등산로를 만들었고, 면사무소 왼편에는 임존성터 표지석이 있다.
대흥현 관아 입구 전경.
또, 조선시대 대흥현의 관아이던 동헌 건물도 남아있으며, 그 뒤에는 한말 대원군이 전국 주요지역에 세워두었던 개화주장을 금지하는 척화비, 태실, 석등이 있다.
더욱이 면사무소 앞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확한 벼를 형제가 서로 몰래 논에 갖다 주었다는 의좋은 형제의 고향이라며 ‘의좋은 형제’ 기념동상을 만들어 두어서 슬로시티를 더 실감나게 한다.
2007년 가을부터 동헌 건물 왼편에 전통 한옥을 지어서 KBS-TV 드라마 '산 너머 남촌에는' 촬영장소로 제공하여 종합관광지로 탈바꿈하려고 노력하는데, 저수지 상류 광시면 관음리에는 한말 항일운동을 하다가 붙잡혀서 왜로 끌려갔다가 순절한 면암 최익현 선생의 묘소(2012.01.18. 청양 모덕사 참조)며, 전국 제일의 광시 한우고기마을인 광시면사무소 앞에는 1906년 홍주의병의 첫 거사지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이제 지금까지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우리에게 점점 정신적 빈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화된 현실에서 예산군이 어느 정도 그 공허함을 메워줄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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