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안내서] 가을 끝자락, 色의 향연에 취하다 (만추에 떠난 호반열녀길)
  • 조길상 기자
  • 승인 2019.11.1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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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호수에 비친 해의 반영과 붉게 번지는 억새가 비경을 이룬다.

 

 

쓸쓸히 나뭇잎 지는 소리를(蕭蕭落木聲)
성근 빗소리로 잘못 알고서(錯認爲疎雨)
스님 불러 문 나가서 보라 했더니(呼僧出門看)
시내 남쪽 나무에 달 걸렸네요(月掛溪南樹)
송강(松江) 정철(鄭澈) - ‘한밤중 산속의 절에서(山寺夜吟)’


나뭇잎 지는 소리를 빗소리로 착각해 동자승에게 나가보라고 했더니 밖에 나가본 동자승은 ‘시내 남쪽 나무에 달 걸렸네요’라는 다소 엉뚱한 답을 하지만 쓸쓸한 가을밤 후드득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는 서서히 다가오는 겨울을 연상케 한다.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입동(立冬). 겨울에 들어선다는 이날, 대청호오백리길 3구간인 호반열녀길을 찾았다.

입동날 추우면 그해 겨울은 몹시 춥다는 말이 있는데 이날 대전지역은 최저기온 1.2도, 최고기온 14.6도, 평균기온 6.8도를 기록했고 일부 지역에선 영하권을 기록할 정도로 한파가 몰아닥쳤다. 하루 전인 7일에만 하더라도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이날의 날씨는 가을이 가고 있음을, 또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한층 추워진 날씨 탓일까. 가을에 산을 울긋불긋 만들었던 단풍들도 마지막 힘을 다해 빛을 내는 느낌을 준다. 바람에 흩날리는 노란 은행잎과 어느새 떨어져버린 낙엽이 발에 밟히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언뜻 쓸쓸하게 들린다. 호반열녀길의 시작점인 냉천버스종점에서 대청호를 바라본 감상이다. 이제는 고즈넉한 시골길을 따라 걸어야 할 때다.

 

 

오색빛깔로 물든 숲길에 접어들면 오감으로 만추를 실감할 수 있다.
오색빛깔로 물든 숲길에 접어들면 오감으로 만추를 실감할 수 있다.

 


지난 여름, 머리 위의 햇님이 그렇게도 싫었건만 인간의 간사함이랄까, 이제는 길 좌우로 높게 솟은 산들이 그렇게도 밉게 느껴진다. 그래도 다행인 건 눈과 마음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멋진 풍경이 있다는 점이다. 한여름의 생명감 가득한 모습은 아니지만 알록달록 물든 산의 모습과 사시사철 푸른 대청호,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은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자연의 주는 감동을 자양분 삼아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호반열녀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유명한 ‘근장골 전망대’를 향해서다.

 

근장골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청호. 섬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근장골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청호. 섬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호반열녀길에서 잠시 빠져나와 근장골 전망대로 가는 길목엔 은행나무가 서 있다. 표지가 있어 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특히 이 계절엔 머리 위 나무에도, 발바닥 아래 도로 위도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어 더욱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게 가을의 정취에 취해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근장골 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근장골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청호는 다도해를 연상시킨다. 다만 이 계절엔 섬 곳곳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이곳을 찾은 이들이 대청호의 멋진 풍경을 앉아 감상할 수 있도록 준비된 돌의자에 잠시 몸을 의탁해 본다. 눈앞에는 그림 같은 풍경이, 귓가엔 낙엽 지는 소리가 마치 무릉도원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사계절 어느 때고 나쁘지 않지만 가득 찬 가을이 주는 감동에 한껏 빠져든 까닭에 즉흥적으로 다음 코스를 선택한다. 본래라면 양구래를 거쳐 냉천길 삼거리에서 관동묘려를 향해야 하지만 호반열녀길에 존재하는 또 다른 전망대로 방향을 틀었다. 목적지는 마산동 전망대다.

마산동 전망대의 특징은 높은 곳에 있지 않다는 거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아닌 눈앞에, 그리고 발 앞에 넘실거리는 대청호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은빛의 억새와 갈대, 울긋불긋한 단풍과 노란 은행잎, 만남이 제법 짧아진 햇님이 지평선 너머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탁 트인 대청호의 모습과 전후 좌우할 것 없이 아름다운 만추(晩秋)의 절경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전망대에 조성된 정자에 앉아 근장골 전망대와는 또 다른 절경을 지긋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이런 곳에서 살고싶다’는 마음이 절로 샘솟는다.

글·사진=조길상 기자 pcop@ggilbo.com

 

걷는 족족 가을빛으로 물든 풍경이 발길을 붙든다.
잔잔한 호수 위 흩날리는 억새가 가을 운치를 더한다.
양구례에서 바라본 대청호
곱게 물든 단풍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곱게 물든 단풍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조길상 기자 | pcop@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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