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윗마을 부용이와 아랫마을 사득이의 사랑은 ‘부사(芙沙)동’이 됐다. 언제적 사람들일까? 역사 짧다는 대전에서 솔솔 살아나는 부용이와 사득이의 이야기는 무려 백제시대로 올라간다.

홀어머니를 모시던 부용이와 사득이는 매일같이 샘으로 물을 길으러 왔다. 병든 어머니를 봉양하려면 하루에도 수차례 물을 길어 와야 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걸음마다 흘러 넘치는 물동이를 짊어지고 다니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날부터 그 젊은 남녀는 두 볼이 발그레졌다. 어여쁜 부용이와 씩씩한 사득이가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하지만 시절은 백제와 신라가 한참 싸우던 찰나였고 사득이는 전쟁에 끌려나가게 된다. 돌아오면 혼인하자고 철썩같이 약속해두고 둘은 헤어졌다. 얼마나 지나갔을까? 이웃들은 속속 돌아오는데 사득이는 도통 소식이 없었다. 윗말과 아랫말을 바삐 오가며 두 어머니를 봉양하느라 쉴 틈도 없었지만 보고싶은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절절해졌다. 이제나 오려나 저제나 오려나 아침이나 밤이나 선바위에 올라 부용이는 사득이를 기다렸다.

그러다 어느날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부용이는 더욱 초조해졌다. 꿈이 너무나 생생해서 새벽부터 일어난 부용이는 해가 뜨기도 전 보문산 선바위에 올라 사득이가 떠난 고개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임은 아직도 걸어오는가보다 생각하고 내려서는 순간 부용이는 선바위에서 미끄러져 죽고 말았다.

그 뒤 이상하게도 마을 샘은 더 이상 솟아오르지 않게 됐다. 가뭄이 심하던 해였다. 펑펑 솟아나던 샘이 마르자 사람들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어느날 윗말 노인과 아랫말 노인이 똑같은 꿈을 꾸어 꿈에서 시킨 대로 백설기를 쪄 놓고 죽은 부용이와 사득이를 혼인시키고 함께 살도록 붙여놨다. 그러자 말랐던 샘이 바닥이 뚫린 것처럼 퀄퀄 솟아올랐다.

이탈리아에 가면 베로나라는 도시가 있다. 그 곳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살고 있었다. 이야기는 알프스를 넘고 바다를 건너 셰익스피어가 사는 영국에 닿아 세계적인 소설이 됐다. 베로나에 밀리지 않는 대전의 부용이와 사득이가 세계화되는 건 어쩌면 시간문제다. 일제강점기 사라졌다가 해방되고 극적으로 회복된 부사칠석놀이는 1994년 10월 21일 제3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최우수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전천에 동구와 중구를 연결하는 커플브릿지가 생긴다. 옛 홍명상가와 대전극장 주변에 쏟아져 나왔던 젊은이들을 불러모으는 장소가 되길 바라며 만들어졌다. 의미없이 커플브릿지 말고 '부용이와 사득이다리'라고 하는 건 어떨까 가만히 제안해본다. 이야기가 도시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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