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치적으로 형성된 개념 유지
다문화 수용 ‘다문화민족주의’ 절실

우리는 흔히 국가의 정통성을 말할 때 ‘한민족’을 앞세운다. 단일민족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오늘날 다문화·세계화의 확장은 국가공동체가 ‘핏줄’로 구성됐다는 단일민족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껏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단일민족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고려의 후삼국통일 이후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긴 세월 동안 한반도에선 민족의 원초적 구성 요소인 국가와 역사, 전통, 언어는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한민족=단일민족’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었던 건 한국인 특유의 강한 민족주의로 인한 자긍심이 대한민국을 다른 나라와 구별하는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에게 단일민족의 의미는 일제강점기 일본에 항거하며 주권 회복을 위한 독립투쟁 과정에서 국가 부재 공백을 메워주는 버팀목이자 긍지였기에 더 남다르다. 한민족=단일민족의 명제가 민족 저항의 무기였고 대중의 의식을 깨우는 수단이었던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단일민족의 생기(生氣)는 딱 거기까지여야 했다. 우리에게 단일민족의 인식은 근대화 이후 100여 년간 정체성과 소속감을 고취시켜주고 생사와 기쁨을 함께하는 구심점이었으며 오늘날 남북으로 나뉜 분단의 현실 속에선 통일의 명분이다. 문제는 유사 이래 문화·정치적으로 형성된 단일민족의 개념을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오늘까지 이를 혈통적 부분에서의 우월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는 데 있다.

고려시대 만해도 내자불거(來者不拒), 즉 ‘오는 자는 거절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12세기 초까지 17만 명가량의 이민족이 이 땅에 건너왔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부모는 여진족이었고 임진왜란 때면 일본에서 태어나 한반도로 넘어온 김충선 등 다수의 귀화인이 역사에 등장한다. 특히 현대로 넘어오면 한국의 성씨 5582개 중 순수 국내 전래 성씨가 270여 개 뿐이라는 지난 2015년 한국인구주택총조사 결과는 과연 순수 혈통 100%인 한국인이 있는지 의구심을 들게 한다.

우리에게 단일민족은 혈통이 아닌 조선말·일제강점기 외세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발로된 문화·정치적 ‘단일(單一)’이다. 포용성과 융합성이 강하고 귀화인을 용해시켜 생활문화, 가치관에서 동질성을 확보한 단일민족이 본래 의미인 것이다.

지난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우리 정부에 “한국 사회의 다민족적 성격을 인정하고 단일민족 국가 이미지를 극복하라”고 권고했다.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해 8월 말 기준 전체인구 5170만 9098명의 약 4.7%인 242만 198명의 외국인이 한국에 체류 중이다. 한 국가에 체류하는 외국인 비율이 5%일 때를 다문화 사회로 본다는 점에서 그 진입 단계에 있는 셈이다.

우리에게 단일민족은 그것이 비록 순혈의 의미였을 지라도 오랜 기본관념이었음을 부인할 순 없다. 하지만 인구·사회적 변화나 경제구조로 볼 때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도 불가피하다. 단일민족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다문화를 수용하는 ‘다문화민족주의’가 절실한 이유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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