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나무위키

 

▲3월 10일=귀주대첩(龜州大捷)이 고려군의 승리로 끝나다.

귀주대첩은 고려가 요나라를 대파한 전투다.

고려는 건국부터 요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고려는 고구려와 발해의 뜻을 잇는 국가인데 요나라를 세운 거란족이고구려와 발해를 멸망시켜서다. 여기에 고려는 요나라와 국경을 마주해 늘 대립이 있었다.

요나라 역시 고려가 눈엣가시였는데 요나라 입장에선 주변 송나라 견제에 바쁜데 후방에 위치한 고려가 굉장히 신경 쓰였다. 이에 고려가 송나라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게 하거나 고려를 제압해야 했다. 요나라가 선택한 건 고려 침공이었다. 요나라의 1차 침입 때 유명한 서희의 외교력으로 고려가 강동 6주를 얻었고 2차 침입 땐 별다른 소득 없이 요나라가 물러갔다.

3차 침입 땐 유명한 귀주대첩이 발생한다. 고려는 강감찬을 원수로 임명하고 요나라와 전쟁에 돌입했다. 강감찬은 현재의 평안북도 구성시 인근인 귀주란 곳에서 요나라와 전투를 벌였고 수도에서 출발한 고려의 원군이 요나라의 후방을 치는 데 성공한다. 1019년 오늘 고려가 승리를 쟁취하며 귀주대첩이 마무리됐다.

요나라는 세 번째 고려 침공 때 10만이 넘는 군사를 이끌고 왔으나 1000명만이 살아 돌아갔다고 한다. 귀주대첩의 실패로 국력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후 고려를 침공하지 못했다.

살수대첩, 행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한민족 4대첩의 하나로 불린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