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소쩍새

김용락

일흔 노부모가
시골집에서
8개월 어린 딸을 키우고 있다
5월이 되어도 농사는 이미 손에 놓은 지 오래
늙은 아버지 등에 어린 딸애가
나비처럼 붙어 있다
삶과 죽음의 그 묘한 대비
아카시아 독한 향기
밤안개에 묻혀 마을을 뒤덮고
소쩍새 소리
나직이 낡은 창호지 문 창을 울릴 때
잠 못 이룬 새벽이
어느덧 내 베갯머리에 와 있다

 

▣ 어린 딸을 시골에 계신 노부모에게 맡기고 객지를 떠도는 아들이 오랜만에 집에 왔습니다. 딸은 겨우 8개월, 아직 돌도 지나지 않았군요.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요? 시골집에 혼자 들렀는데, 왜 혼자인지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사업 실패? 아니면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제시된 시의 정황이 읽는 이의 마음을 처연하게 합니다. 어린 딸을 시골집에 맡기자니 본인도 늙은 부모님도 다 맘이 편치 않았을 겁니다. 어린것은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엄마, 엄마를 찾으며….

집에 와 보니 올 농사는 이미 작파해버렸습니다. 5월인데도 부모님들은 일할 기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쓸쓸하고 적막한 시골집. 고추 모도 안 심고, 논에 모내기할 물도 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된 연유는 어린 손녀딸이 가장 클 것입니다. 어린 것을 맡아 기르기로 했으니 그 등쌀에 손이 묶여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오늘도 보니, ‘늙은 아버지 등에 어린 딸애가 / 나비처럼 붙어’ 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그걸 보며 시인은 삶과 죽음의 그 묘한 대비를 느낍니다.

그러니 잠이 올 리 없지요. 저녁 먹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문틈으로 아카시아 향기가 속절없이 묻어나고, 소쩍새 우는 소리가 밤의 적막을 후벼 팝니다. 삶이 가져다 놓은 커다란 짐 보따리에 눌려 새벽이 되도록 잠들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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