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쑤저우박물관 자기
사자림 태호석
호수
정원
쑤저우박물관 담, 산, 물
사자림문창
쑤저우박물관 정원
사림답설
쑤저우박물관
사자림 유네스코 표지석
쑤저우박물관
사자림 입구(청 강희제 글씨)

[금강일보] 천년 고도 쑤저우의 박물관은 이 지역에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이외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쑤저우의 원림(園林)을 현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중국에서는 정원을 원림이라고 하는데, 원림이 우리네 정원과는 격을 달리하여 한자 원(園)의 글자처럼 네모난 담장 안에 돌로 만든 인공산, 여러 형태로 조성한 연못, 대규모 저택과 다양한 수목들은 원림 주인의 사상이 고스란히 스며든 저택이고, 또 귀족이나 부호들이 신분과 부의 상징으로 정원 조성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는 점은 이미 누차 설명한 바 있다.

또, 원림을 부호나 귀족들의 개인 저택이라고 할 때, 수향(水鄕)은 일반 주민들이 사는 수상마을이어서 쑤저우에서는 ‘21세기 현대판 원림’이라고 하는 쑤저우박물관, 쑤저우 4대 원림 중 한둘, 그리고 대표적인 수향마을인 저우좡(周庄)마을을 돌아보면 좋은 비교가 된다.(중국 4대 명원은 4월 15일 자 쑤저우 개요 참조)

쑤저우박물관은 쑤저우 기차역에서 관광버스 2, 5번이나, 일반버스 50, 202번을 타고 쑤저우박물관 앞에서 내리면 된다. 쑤저우박물관의 입장료는 무료이다. 게다가 박물관 바로 옆에 ‘중국 4대 원림’의 하나인 졸정원과 사자림을 한꺼번에 골고루 둘러볼 수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쑤저우박물관은 1960년에 처음 건축되었으나, 그동안 도시의 발전을 반영하여 2002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 1917~2019)의 설계로 새로 건축되었다. 건물 외관은 중국의 전통과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의 패널들을 이어붙인 독특한 초현대식 건축양식과 또 내부 전시실도 쑤저우에서 유명한 원림(園林)을 현대식으로 설계했다. 다양한 형태의 문동(門洞)을 통해서 물과 다리, 담과 담에 그려진 산을 보게 하고, 또 연못 등이 어우러져 마치 살아있는 그림 한 폭을 보는 것처럼 설계하여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서양화를 전시하는 갤러리처럼 느껴진다.

쑤저우박물관을 설계한 이오 밍 페이는 1917년 광저우에서 중화민국 중앙은행 총재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 MIT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이후 미국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면서 1983년 건축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은 세계적인 건축가이다. 그의 조부 베이런위안(貝仁元)은 쑤저우의 부호로서 1917년 ‘쑤저우의 4대 원림’ 중 하나인 사자림(獅子林)을 매입하여 저택으로 고쳐서 살았는데, 조부는 상하이에서 학교에 다니는 손자 베이위밍(貝聿銘)을 방학 때마다 불러서 사자림에서 꿈과 상상력을 키우게 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금융가가 되기를 기대했지만, 그가 부친의 기대와 달리 건축가가 된 것도 아마 어린 시절에 사자림에서의 추억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의 대표작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 뒤뜰에 설치된 유리 피라미드(pyramid)를 비롯하여 대나무를 형상화한 홍콩의 72층 중국은행, 미국 뉴욕의 존. F.케네디 공항 터미널, 뉴욕 컨벤션 센터, 인디애나대학교 미술관, 베이징 샹산(香山) 호텔 등이 있는데, 워싱턴 DC의 국립미술관은 최고의 걸작이라고 한다. 그는 간결한 선을 사용한 동양적인 아름다움과 건축 소재로 사각형과 오각형 등의 패널을 사용하여 동서양의 문화를 독창적으로 융합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파란 하늘 아래 좌우로 길게 펼쳐진 백색 담장은 하나의 화폭이고, 또 그 앞의 돌은 산을 묘사하고 있다. 그 앞의 호수를 가로질러 걷는 사람들과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그림 한 폭을 보는 것 같다. 페이가 현대적 시각으로 복원한 원림의 다양한 형태의 문동과 문창(門窓) 등은 전통 원림의 역사를 엿보게 한다. 전시실의 전시물은 희귀 도서, 상아, 회화, 도자기 예술품 등 약 1만 5000점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옥과 상아에 조각한 작품이 빼어나다. 쑤저우박물관의 입구와 출구가 다른데, 출구는 이전에 쑤저우박물관으로 사용되었던 태평천국의 충왕부(忠王府)이다.

베이징의 이화원(頤和園), 청더(承德)의 피서산장(避暑山莊), 쑤저우의 졸정원은 유원(留園)과 더불어 ‘중국의 4대 정원’이라고 하는데, 쑤저우에만 중국 4대 명원 중 졸정원과 유원 등 2개의 정원이 있다. 또, 쑤저우의 창랑정(沧浪亭 =송), 사자림(狮子林= 원), 졸정원(명), 유원(청)은 각각 송·원·명·청을 대표하는 ‘쑤저우 4대 명원’이라고 하며, ‘쑤저우 4대 정원’은 199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일괄 지정되었다.(중국 4대 명원에 관하여는 4월 15일 자 쑤저우 개요 참조)

줄정원은 원래 원나라 때 다홍사(大弘寺)라는 사찰이었으나, 1510년 명 정덕제(正德帝: 1505 ~1521) 때 감찰어사를 지내다가 실각한 왕헌신(王獻臣)이 낙향하여 16년 동안 고쳐서 개인 정원으로 만든 곳이다. 졸정원이란 이름은 진(晉)나라 때의 시인 반악(潘岳)의 시 한거부(闲居赋)에서 ‘어리석은 자가 정치를 한다’는 졸자지위정拙者之为政)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개인 정원이지만 황실 원림과도 견줄 만하다고 할 만큼 유명했다. 그러나 왕헌신은 이곳에서 겨우 2년간 살다가 죽었으며, 그나마 아들이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해서 타인에게 넘어갔다. 현재의 정원은 1860년 청나라 때 재건한 것이다.

쑤저우에서 가장 큰 졸정원의 입장료는 90원(한화 약 1만 5000원)이다. 졸정원은 5만 2000㎡(약 1만 5500평)를 동· 중·서·주택 등 4구역으로 나뉘는데, 입구에 들어서면 주건물인 란쉐탕(蘭雪堂)이 맨 앞에 있다. 이곳에서는 졸정원 전경을 그린 그림(拙政園全景圖)을 볼 수 있고, 이 곳을 지나면 넓게 트인 호수 북쪽 석가산 위에는 방엔팅(放眼亭), 텐취안팅(天泉亭) 등 멋진 정자들이 있다. 졸정원은 호수가 정원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다리로 이어진 정원을 걸으면 마치 모든 건물이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부는 지세가 시원하게 트여 있고, 평평한 언덕 위에는 부용사(芙蓉榭)· 천천정(天泉亭) 등이 있는데, 원향당(远香堂)은 졸정원의 한가운데에 있어서 사방이 탁 트인 누창을 통해서 졸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원향당은 원래 문풍지 대신 투명한 비단을 누창에 바르고, 여름에는 그 비단을 모두 떼어서 사방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게 한 고급스러운 정자였으나, 지금은 전부 파란색 유리를 끼웠다. 이것은 왕헌신이 눈 내린 설경을 좋아했으나, 쑤저우에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기 때문에 파란 색유리를 통해서 풍경을 바라보면서 설경을 대신 만끽했다고 한다. 이처럼 원향당은 원림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 연못과 경치를 빌려온다는 차경(借景)으로 유명한데, 담장 너머로 북사탑을 바라보면 멀리 있는 북사탑이 마치 원림 안에 있는 듯하다.

서부는 호수를 따라 구불구불 뻗은 회랑과 수면에 아름다운 그림자를 드리운 누각 등이 수려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데, 주건물인 삼십육원앙관(三十六鴛鴦館)과 십팔만다라화관(十八曼陀羅花館)은 합쳐서 네모꼴을 이루고, 네 모퉁이에는 각각 곁채가 한 칸씩 딸려 있다.

호수 바로 옆에 지은 수헌(水軒)은 뒷산의 삿갓 정자와 더불어 부채를 펼쳐놓은 모양을 이루고, 서북쪽에 조성한 석가산 위에 부취각(浮翠閣)이라는 팔각형의 2층 누각은 졸정원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연못 북쪽의 도영루(倒影樓)에는 배문읍심지재(拜文揖深之齋)라고 부르는 방이 있는데, 문인 심주(沈周)· 문징명의 신상과 왕씨졸원기(王氏拙園記), 보원기(補園記) 등의 비석이 진열되어 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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