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학기기 국산화 위해 창업 결심
설계·가공·조립 3박자 조화 이뤄
창업 후 꾸준하게 성장가도 달려
High-end급 기술력, 세계가 인정

[금강일보 이기준 기자] 4차산업혁명, 이 시대적 키워드는 누군가에겐 도태의 신호지만 또 누군가에겐 기회다. 특히 새로운 가치 창출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치열한 무한경쟁의 시대,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 하면 ‘공든 탑’도 무너진다. 자연스럽게 경제 생태계에서 도태되는 거다. 끊임없이 성장 사다리를 타기 위해 ‘창의적 혁신’으로 지속가능한 기업의 조건을 충족시켜 나가야 하는 이유다. ‘시계 제로’의 불확실성 앞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아니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기 위해 새로운 가치를 키워나가는 2019년 대전시 선정 유망중소기업의 생동감 넘치는 고군분투 현장을 들여다본다. 이들이 걸어온 길에서 지속가능한 기업의 조건들도 모색해 본다. 편집자

High-end, ‘고성능’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기업의 기술력을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 요소다. 수많은 상용제품들 중에서 High-end급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그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이 축적돼 있다는 근거가 된다. ㈜엘퓨젼옵틱스(대표 박진준·45)는 창업 6년 만에 산업용 광학기기 분야에서 기술력으로 정점에 오른 기업이다. 국내를 넘어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최근 세계적인 광학기기 제조사인 독일 유수기업들과 0.6㎛ 결함 검출기를 놓고 성능평가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판정승을 거뒀다. 이 제품은 디스플레이 검사장비 공정에 들어갈 예정이다.
 

#. 기술력 믿고 열정과 도전으로 창업

박진준 대표의 전공은 광학(光學, Optics)이다. 말 그대로 빛과 관련한 현상을 다루는데 여기에 렌즈를 더해 수많은 광학기기를 만든다. 현미경·카메라부터 CCTV, 산업용 계측·검출장비(머신 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광학기기를 생산하고 있다. 박 대표가 직원 2명과 함께 엘퓨젼옵틱스를 설립한 건 지난 2013년 6월이다. 관련 업계에서 나름 인지도 있는 R&D 인재였던 그가 10여 년의 직장생활을 접고 홀로서기를 결심한 건 거의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던 광학기기를 국산화해보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도전적인 과제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회사 연구실에선 그저 희망사항이었어요. 그래서 창업을 결심했죠. 그간 쌓아온 기술력을 믿고 광학기기 국산화율 100%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거예요. 처음엔 녹록지 않았지만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어요. 바로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이죠.”

창업기업은 피해갈 수 없다는 데스 밸리(Death Valley), 그러나 엘퓨젼옵틱스는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했다. 그것도 창업 2년차부터 수익을 낼 정도 시장 진입이 빨랐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 틈새시장을 파고든 결과다.

“이미 유수의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한 상용제품부터 시작했다면 아마 자리를 잡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래서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에 공을 들였죠. 다행히 국내 대기업 협력사로부터 프로젝트 제안이 왔고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현미경대물렌즈였는데 지금도 쓰고 있다고 합니다.”

 

#. 신뢰를 쌓아가면서 때를 기다린다

박 대표는 상용 제품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려 빠르게 국산화하기도 하지만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다시 말해 고객의 요구에 따라 제품을 만드는 맞춤 제작을 더 즐긴다. 기술력과 노하우(know-how)를 쌓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이면서 신뢰를 쌓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객의 요구조건에 맞추기 위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엘퓨젼옵틱스는 차곡차곡 포트폴리오를 늘려간다.

“지금까지 커스터마이징 프로젝트에서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도전할 수 있을 만한 일들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봅니다. 특히 산업용 검사장비의 경우 향후 필요한 기술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할 수가 있습니다.”

박 대표가 커스터마이징 프로젝트를 마다하지 않는 건 그만큼 기술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창업을 결심할 수 있었던 그 ‘믿을 만한 구석’에 대한 확신을 박 대표는 확고하게 갖고 있다.

“광학기기의 핵심은 빛 이용을 포함한 설계와 렌즈 가공기술, 그리고 조립입니다. 렌즈와 모듈을 정확하게 가공·조립할 수 있는 기술과 최상의 설계, 이 3박자가 맞아야 원하는 퍼포먼스(성능)를 구현할 수 있어요. 이 3가지 요소를 조율하는 것이 노하우죠. 특히 엘퓨젼옵틱스의 강점은 공차설계에 있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다고 하더라도 렌즈가 들어가는 모듈을 조립할 때 설계와 결과물 사이에 오차가 생기고 또 이 모듈이 작동하면서도 오차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이 오차까지 감안해 설계할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의 요구를 맞출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기술력이 곧 High-end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죠.”

엘퓨젼옵틱스는 현재 상용 제품을 포함해 70여 곳에 달하는 고객사를 보유하고 있고 이 중 10여 곳은 반도체·디스플레이 글로벌 메이커인 삼성전자와 LG 자동화 검사설비 제조업체들이다. 커스터마이징 프로젝트들을 통해 박 대표의 ‘믿을만한 구석’을 확인받으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중이다. 물론 이를 발판으로 해외시장의 문도 두드리고 있다. 광학기기 대리점을 통해 상용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는데 조만간 직접 해외 영업에도 나설 예정이다.

 

#. 아! 마케팅 그리고 현실적 고민들

엘퓨젼옵틱스는 얼마 전 SURP-Ⅱ-333C를 선보였다. 산업공정에서 미세결함을 검출하기 위한 16K Camera용 고해상도 렌즈로 국내 최초다. 최대 F/2.3에서도 균일한 성능을 내는 세계 최고 성능의 고배율 렌즈로 렌즈 성능평가지수인 MTF 성능이 전체 필드 영역에서 높고 균일해 세계 무대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엘퓨젼옵틱스는 이 같은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시장 인식’의 한계에서 고전하고 있다. 기업 인지도를 끌어올릴 마케팅이 과제로 남아있다는 얘기다.

“스타트업은 모든 것이 도전이지만 마케팅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는 것보다 그것을 알리는 것, 그리고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어려워요. 기술력으로 돌파해 나가곤 있지만 좌절할 때가 더 많습니다. 기업 인지도와 평판은 시간과 신뢰가 쌓여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압니다. 시장에 이름을 남기면서 버티고 기다릴 수밖에요.”

요즘 엘퓨젼옵틱스는 또 다른 현실적 고민을 안고 있다. 바로 공간 확보다. 충남대 산학협력센터에서 시작해 2년여 만에 미건테크노월드로 확장 이전하면서 직원이 많이 늘었지만 고용을 더 늘려야 하는 상황이어서 또다시 확장 이전이 불가피한데 대전지역 땅값이 너무 뛰었다.

“주변을 알아봤는데 땅값이 너무 올라서 엄두가 나질 않아요. 근처에 작은 공간이라도 마련해 회사를 분리하자니 전체적인 생산 효율이 떨어질 게 분명하고, 현재로선 신동·둔곡지구가 메리트가 있는 것 같은데 완공시점이 많이 남아있고,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이래저래 고민입니다.”

너도 나도 어렵다고 하는 시절, 기술력 위에 성장가도를 달리는 젊고 패기넘치는 ㈜엘퓨젼옵틱스의 미래가 밝게 투영된다.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사진=함형서 기자 foodwork2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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