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금강人

칼럼 제목이 꽤 도발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테지만, ‘충청홀대론’을 내세워 지역감정을 자극하려는 글이 아니다. 충청인 특유의 해학과 웃음의 미학을 담은 글을 쓰려 재미있게 표현해 본 것이다.

최근 발간된 ‘충청도는 왜 웃긴가?’라는 책에 눈길이 갔다. ‘청풍명월의 말과 웃음’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한 지역의 고유 언어인 사투리를 통해 그 구성원의 집단의식에 접근한 언어사회학적 문화비평서로, 충청도식 화법에 담겨 있는 독특한 정서와 기질적 특성을 심도 있게 분석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충청도 출신이 아닌 점이 흥미롭다. 경남 밀양이 고향인 전직 방송인 안상윤(66) 씨의 작품이다. 외지인의 시선으로 충청인의 특성을 연구한 것이다.

서울대 사회문화연구소가 ‘충절의 고장’, ‘양반의 고장’으로 불리는 충청도에 대한 고정관념을 주제로 지역 정체성 연구를 했는데, 한국인은 충청도의 전형적 기질을 ‘느긋하다’, ‘소박하다’, ‘온순하다’ 순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인식이 중요 정책 결정에 있어 충청도를 경시하고 무시하는 경향으로 연결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데, 이 책 본문에는 이 같은 구절이 나온다.

‘경상도는 높고 험한 산들과 큰 강을 끼고 있어 급하고 단호한 면을 보인다. 전라도는 산세가 부드럽고 너른 들판 덕에 식량도 풍부해 여유가 있고 정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충청도는 어떨까? 그들에게 있어 유머는 곧 삶의 방편이자 불굴의 정신이었다.’

저자는 아래·위 사이에 낀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유독 피침이 많았던 복잡다단한 충청도의 역사에 주목하고, 그러한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뭉근함’, ‘능청’, ‘너스레’, ‘눙치기’, ‘재치’, ‘과장’, ‘모사’ 등 충청도의 기질적 특성을 조목조목 짚으면서 ‘달처럼 한적하니 밤하늘에 떠서는 안 보는 척하면서 세상만사 다 굽어보고, 분명히 느낄 수 있을 만큼 존재감을 드러내는 소슬바람’, 즉 ‘청풍명월(淸風明月)’에 충청인을 비유한다. 청풍명월이라는 충청도의 퍼스낼리티(Personality)가 혼탁한 언어와 극단의 진영 논리에 발목 잡힌 우리 사회의 강퍅한 경직성을 풀어줄 수 있는 멋진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4·15 총선 직후 21대 국회의 문이 열리기도 전에 ‘2030 아시안게임 공동유치’, ‘유성복합터미널 정상화’, ‘중부지방해양경찰청 내포신도시 유치’ 등 충청권 당선인들이 선거기간 제시했던 주요 공약(公約)이 줄줄이 ‘빌 공(空)’자 공약(空約)으로 전락하고 있는데도 농락을 당한 지역 유권자들은 “뭔 문제가 있냐”는 듯 무덤덤하다. 느긋함을 넘어 감각이 마비된 듯하다. 선거 때마다 헛공약이 반복되는 것도 이러한 충청인의 우유부단한 기질이 자초한 적폐가 아닐까?

총선에서 충격적인 참패를 당한 미래통합당에선 각각 4선, 3선에 성공한 이명수(충남 아산갑), 김태흠(〃 보령·서천) 의원이 위기의 당을 살려내겠다며 원내대표 경선 도전을 잇달아 선언했다. 하지만 막상 후보 등록일이 되자 나란히 출마를 포기하며 체면을 구겼다.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 후보를 구하지 못했다는 게 그 이유라니, 싱겁게 출사표만 던진 모양새가 되며, 충청 정치권의 역량 부족, 리더십 부재만 노정한 셈이 됐다.

오는 30일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충청 정치인들이 전반기 의장단에 속속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전국 최다선인 6선의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대전 서구갑)이 의장직에 오르려 하고, 같은 당 이상민 의원(〃 유성을, 5선)과 통합당 정진석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 〃)이 여야에 1석씩 배정된 부의장직을 노리고 있다. 이들에게 21대 국회를 이끌어갈 기회가 온다면 진보와 보수, 영남과 호남으로 양분돼 진영 논리와 지역 갈등으로 치닫는 우리 정치의 배타성·경직성을 충청인 특유의 해학과 웃음으로 풀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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