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스페인 그라나다에는 이슬람궁전이 하나 있다. 알함브라다. 사막에 살던 사람들이 물과 나무가 신기해서 새 건물을 물과 나무의 궁전으로 만들었다. 도르르 도르르 흐르는 물줄기는 기타 선율을 타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됐다. 스페인은 긴 시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찾아 떠난 시점이 이슬람이 유럽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을 기념한 것이었다. 이가 갈리는 이슬람이 떠났어도 스페인은 이슬람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그렇게 그라나다는 스페인 남부의 관광횃불이 됐다. 지킨다는 것은 사는 사람에게는 축복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다. 현대 기술로 얼마든지 다시 짓는 것이 가능하지만 오리지널이 품어내는 그 어마무시한 힘을 복제하기는 불가능하다. 

대전에도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있었던 식민지의 기억이 있다. 어쩌면 대전은 어느 날 기차가 지나가면서 신데렐라처럼 만들어졌다.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던 대전은 경부선에 이어 호남선까지 지나가면서 명실상부한 철도도시가 됐다. 

철도를 만들면서 초기에 정착한 188명의 일본노동자들은 대전거류민회를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했고 그뒤 일본인 수는 1000% 증가했다. 대전역을 둘러싸고 정착한 초기 정착촌은 신기하게도 한국전쟁의 불구덩이 속에서도 한 곳이 살아남았다. 소제동 철도 관사촌 40여 채는 시간여행을 온 듯 나무 전봇대와 함께 멀쩡하게 남았다. 그 덕에 특화시키지도, 관광지로 탈바꿈하지도 않았지만 전국 근대여행의 꽃같은 곳이 됐다. 인기는 가히 군산의 경암동 철길마을과 같았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어 그 골목은 참 따뜻했다. 보석같은 공간은 몇년동안 진한 사랑을 받았다. 

그러다가 그 곳에도 버티지 못하고 아파트 바람이 불었다. 긴 시간 끌어왔으나 2020년 그 곳은 뜯기고 있다. 여타 근대 건축물 기반 도시재생 도시들은 50년만 지났어도 근대 건축물로 여기고 그 골목, 그 건물 이야기에 살을 붙여 나가는데, 그렇게 근대도시기행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대전은 반대로 가고있다. 

인천은 더욱 과감하게 거의 쇠락해버린 차이나타운을 다시 만들고 청나라 조계지의 기억을 불러왔다. 중국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온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여기에 더해 기록 속에는 있으나 (경인선 기차신설로 인천에 머무를 필요가 없어) 일찌감치 사라진 인천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었던 대불호텔을 복원했다. 그 덕에 기존에 있었던 건축물들이 점처럼 연결되며 인천은 근대건축물기반 도시재생의 선진사례가 됐다. 

그러나 대전은 원도심 속의 ‘원조 도심’을 눈앞에서 지워버리고 있다. 도시는 이제 장소 안에 시간과 사람을 끌어들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시간과 사람은 오래될수록 매력물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원도심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 관사촌은 대전을 근대도시로 견인할 시발점으로서 충분하다. 

최근 들어 철도관사촌 건물을 리모델링해 찻집과 요리집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SNS상에서 대전 전체보다 더 많은 조회수 폭발을 기록하고 있다. 행정기관이 대전방문의해를 맞이해 마련한 행사들이 무색할 만한 외지인의 격한 반응이었다. 옛 건물을 헐지 않고 그대로 둔 것만으로 몰려드는 인파는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근대 건축물이 가진 낯선 노스텔지어의 가능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해시태그 한단어 ‘#소제동’을 찾아 밀려드는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연일 늘어나고 소제동엔 매일 무언가가 생겨나고 있다. 땅값이 뛰어 올라 놀라우면서도 제 모습 그대로를 인정받고 소제동의 가능성을 보는것 같아 흐뭇했다. 역사·문화적 가치는 배제하더라도 원래대로 그냥 두는 것이 더 경제적으로 가치 있다는 것을 원주민 또는 건물주가 알면 어쩌면 재개발이 멈추지는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 아파트는 이미 많지 않은가? 새 건물은 넘치고 넘치지 않는가? 근대건축물이면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지도 못하고 개인소유였기에 그곳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 끝내 아파트가 되기로 했다. 

관(官)은 뭐하고 있었는가? 시민단체는 도시를 지켜보고 있는가? 거주민은 제 지역에 대한 아낌이 없는가? 안 그래도 100년 시간이 고작이라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특징없는 도시에, 이제서야 그나마 남은 근대건축물을 기반으로 기억을 불러오고, 공동체를 복원하고, 나아가 경제적 가능성을 찾아가겠다는 대전 아니던가? 원도심 하드웨어 구축이 끝났으니 이어서 소프트웨어를 구축한다는 대전 아니던가? 근대의 큰 기억 한 자락을 싹뚝 잘라내면서도 근대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대전방문의해 2년차 계획을 어떻게 받아내야 하는가? 

사라진 유산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유산의 불가역성(不可逆性)이 철거 앞에서 두번, 세번 다시 돌아봐야하는 이유다. 천번을 돌아봐도 지키는 것이 도시가 사는 것임을 우리는 유럽의 많은 역사도시를 통해 생생하게 보고 있다. 유산은 지켜서 후회한 경우는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전이 오백년 피렌체냐? 천년 그라나다냐? 고작 백년이다’라고 말할텐가? 어느 도시 어느 건축물이 백년을 거치지 않고 천년이 된단 말인가? 이렇게 철도관사촌을 보내고 나면 대전은 백년의 기억을 내어준 꼴이 된다. 대전의 시작과 같은 건물이기 때문이다. 좋은 기억이라 말하진 않았다. 건물을 지운다고 사라질 기억이었다면 폴란드는 왜 끔찍한 아우슈비츠를 남겼겠는가? 또 그 남김에 대해 그 누가 비난하는가? 

도시를 유지하는 것은 비단 행정기관만의 역할은 아니다. 때문에 후손이 ‘왜 겨우 아파트 때문에 그 귀한 것을 지켜내지 못한거냐’라고 묻는다면 대전 영역 안에 있는 우리는 모두 유죄다. 그날에 죄인은 관과, 그리고 시민, 그리고 멍청한 나다. ‘핵노잼도시가 되어라, 대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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