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배롱나무 할머니

류정환

우리 아파트 102동 앞,
아침마다 유치원 버스에 손주를 태워 보내며
오래오래 손 흔들어주던 할머니

한 열흘 안 보이더니
배롱나무 꽃 피었다.

분홍, 보라, 아롱다롱 꽃무늬 몸뻬에
하양 블라우스, 그만큼 창백한 얼굴로
칠월 불볕에 일찌감치 나와 서성거린다.

어린 손주 돌아오는 걸 한 번만 더 보려고
이제나저제나 버스를 기다리는,
저쪽 모퉁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흔들흔들 기다리는 배롱나무 할머니.
 

▣ 요즘 우리 주변에는 아침에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를 유치원 차에 태워 보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집에 젊은 엄마들이 있으면 몰라도 없으면 어린아이 준비시켜 유치원에 보내는 일은 할머니 몫입니다.

7월이니 아침인데도 여름 햇볕이 짱짱합니다. 그래도 그 시간만 되면 할머니 한 분이 102동 아파트 앞에서 손자를 버스에 태워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 한 열흘 안 보이고, 그 사이 배롱나무가 꽃을 피웠습니다. 시에는 실제 나무인 배롱나무와 ‘분홍, 보라, 아롱다롱 꽃무늬 몸빼에 / 하양 블라우스’를 입은 할머니 모습이 하나로 겹쳐져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할머니가 ‘한 열흘 안 보였다’는 시 구절입니다. 그 열흘간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뒤에 ‘창백한 얼굴’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몸에 탈이 나 병원에 계시다 오지 않나 싶습니다. 게다가 이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하는 것은 맨 마지막 연 첫 행, ‘어린 손주 돌아오는 걸 한 번만 더 보려고’입니다. ‘한 번만 더’ 본다니, 앞으로는 손주와 함께하지 못한다는 말 아닌가요?

그런 할머니가 오늘은 집에 오는 손자를 마중 나와 버스를 기다립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노란 병아리색 셔틀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102동 앞에 서겠지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손자 녀석은 할머니 품에 와락 뛰어들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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