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그리스 페리
치메스
체스메 항

예년 같으면 6월부터 바캉스로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로 공항이 붐볐지만, 올해는 중국 우한발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계 각국이 뱃길과 하늘길을 꽁꽁 막았다. 지난 6월 20일 현재 외무부 해외안전여행 홈페이지(www.0404.go.kr)에 따르면 한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한 나라가 146개국, 입국 후 일정 기간 격리조치를 취하도록 한 나라가 15개국, 그리고 입국절차를 강화한 나라가 21개 국가에 이른다.

또, 코로나 바이러스 웹(http://wuhanvirus.kr)에 따르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계 214개 국가에서 867만 9567명이 감염 확진되고 그중 45만 8808명이 사망하여 치사율 5.29%에 달한다. 우리도 1만 2306명이 확진 판정을 받고, 그 중 280명이 사망하여 치사율이 2.28%라고 한다. 그런데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의 백신이나 치료약이 개발되지도 않았고, 확산추세가 수그러든 조짐도 없는데, 관광산업의 비중이 높은 EU 회원국들의 열화 같은 요구에 EU 집행위원회가 다음 달부터 역외국가의 여행객에게 국경을 열도록 결정했다. 

EU 국가 중 그리스가 가장 먼저 감염 피해가 극심한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을 제외한 독일·오스트리아·핀란드·체코 등 EU 16개국과 한국·일본·호주·중국·뉴질랜드·이스라엘 등 29개국의 입국 허용국가 명단을 발표했다. 따라서 그리스를 찾는 여행객은 6월 15일부터 수도 아테네와 북부 테살로니키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할 수 있게 됐으며, 본토와 지중해의 섬을 오가는 여객선 운항을 재개했다. 물론 입국 시에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한다. 지방 공항이 일제히 운영을 재개하는 7월 1일부터는 입국 허용국가를 더욱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탈리아, 불가리아도 대부분의 EU 국가에 국경을 개방했고 독일도 6월 15일부터 유럽 31개국을, 아이슬란드·벨기에·스위스는 모든 EU 회원국과 솅겐 지역 여행자들에게 국경을 개방했다. 터키도 코카서스 그루지야 공화국과 함께 7월부터 관광객을 맞이할 것이라고 하지만, 아시아국가들은 보수적이어서 세계적인 휴양도시 인도네시아 발리는 10월경에나 개장할 것이라 한다.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는 아직 개항 일정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그리스 개방을 계기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 터키여행을 마친 우리 가족이 터키의 남부 항구도시 체스메(Cesme)에서 지중해를 거쳐 그리스여행을 한 기억이 새롭다. 

지중해

지중해(Mediterranean Sea)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삼 대륙 사이에 있는 육지 속의 바다로서 다양한 민족이 서로 교역하고, 부딪히면서 발전해온 서구 문명의 요람이다. 지중해는 동쪽 터키의 이스켄데룬만 해안에서 대서양과 만나는 서쪽 지브롤터 해협까지 약 4000㎞나 되는데, 시칠리아섬과 아프리카 해안 사이의 해저 360m를 기준으로 동서로 나눈다. 즉, 동부는 다시 그리스가 있는 발칸반도 남쪽의 크레타섬과 리비아의 바르사를 경계로 이오니아해(Ionia)와 에게해(Aegean)로 나누는데, 크레타섬 북쪽 에게해는 서북쪽으로 그리스와 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터키와 접해 있다.

또, 지중해 중부에서 북서쪽에 있는 아드리아해는 이탈리아와 발칸반도와 경계를 이루며, 발칸반도 동쪽에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유고슬라비아의 몬테네그로 공화국, 알바니아 등이 있다. 발칸반도 북쪽은 국경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알바니아·유고슬라비아·불가리아가 있고, 동쪽에 터키가 있다. 지중해 서부는 지브롤터 해협 동쪽, 스페인 해안과 모로코 해안 사이로서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처럼 민족이 다른 삼 대륙 사이에 있는 지중해는 근래 콩고, 예멘, 시리아, 아프리카 사헬 지역에서 분쟁과 기후 변화로 유럽으로 가려는 난민이 많이 늘어나고, 반면에 이들의 불법 입국을 막으려는 조치로 큰 혼란 지역으로 변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1990년대에는 연평균 15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나, 유럽 각국의 저지로 근래에는 38만 5000명 수준으로 감소했으나 난민들이 자국으로 복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중해는 몇 년 전 이탈리아 여행을 할 때 가곡 ‘돌아오라 소렌토로’로 유명한 소렌토 항에서 카프리섬을 거쳐 나폴리로 가면서 페리를 탄 적이 있지만, 그것은 지중해 중부인 이탈리아 연안에 불과했고, 이번에는 지중해 동부를 여행하는 셈이다. 지중해의 동쪽은 북쪽에 흑해, 남쪽으로 아나톨리아와 동트라키아 사이로 마르마라해, 그리고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보스포루스 해협(Bosporus Canal)이 있는데, 터키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서쪽 유럽 지역이 국토의 3%이고, 아시아 쪽이 97%이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 2.7배인 78만 3562㎢로 세계 37위로서 인구는 약 8300만 명이다(2019년). 

터키 페리

국토가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 걸쳐 있는 터키는 북부에서 육로로 그리스로 갈 수 있지만, 우리는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앙카라와 카파도키아를 거쳐 고대도시 에페소(Ephesus)와 목화의 성으로 유명한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등 터키 남부지방을 여행한 터라서 이 코스를 택한 것이다. 사실 인천국제공항에서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까지는 직항노선이 없어서 대개 터키나 이탈리아를 거쳐서 입국하는데, 우리는 그리스여행 후 다시 터키 북부를 거쳐 이스탄불로 와서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체스메에서는 아테네까지 직항하지 않고, 약 7㎞ 떨어진 지중해의 그리스령 키오스섬(Chios: 그리스인들은 히오스섬이라고 한다)에서 다시 크루즈로 갈아타고 아테네의 외항인 피레우스 항(Piraeus)으로 가야 한다. 체스메 항에서 그리스로 가는 출국 심사는 국내에서 연안여객선을 타는 것보다 더 간단한 것에 놀랐다. 특히 그리스는 EU 회원국이지만 터키는 EU 회원국이 아니고, 또 두 나라는 오랜 전쟁으로 앙숙인데도 그랬다. 

출국절차를 마치고 부두로 나가니, 붉은 바탕에 초승달과 별 하나가 그려진 터키 국기가 유난히 펄럭인다. 터키에서는 전국 어디를 가든지 국기를 곳곳에 게양하고 있지만, 외국으로 나가는 체스메 항에서 지중해의 바람이 더욱 강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명색이 외국으로 나가는 외항선인데도 페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대부분 허름한 작업복 차림이고, 또 노인네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것은 인천항이나 평택항에서 중국으로 드나드는 보따리상과 비슷한 모습이다. 이윽고 출항시간이 되자 체스메 항을 출발한 페리는 지중해를 거침없이 헤치고 나갔다. 아시아에서 유럽, 그리고 먼발치로 아프리카 대륙을 바라보는 호기심과 함께 페리가 달려가며 일으킨 뽀얀 물보라가 상쾌함을 안겨주었다. 체스메 항을 출발한 페리는 약 1시간 만에 그리스령 키오스섬에 도착했다. 

키오스섬
키오스섬

키오스섬은 그리스의 수많은 섬 중 다섯 번째로 큰 섬으로서 주민은 약 2만 5000명이 살고 있다. 삼 대륙이 서로 마주하는 지중해에 있는 키오스섬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국가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오면서 중세에는 '시오'(Scio), '키오'(Chio), '사키즈'(صاقيز)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자 주민들은 잦은 외침에 대항하기 위하여 스스로 강력한 상인 공동체를 결성된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키오스섬을 비롯한 에게해(Aegean Sea)의 섬 대부분은 오스만제국의 영토였으나, 1차 대전 때 오스만제국의 패배로 해체되면서 대부분 그리스령이 되었으니 터키인들의 키오스섬에 대한 향수는 적지 않다. 

키오스항에 도착한 우리는 그리스 입국 심사를 거쳤는데, 입국장은 선착장에 세워진 단층 슬래브 건물이 전부였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EU 회원국 간은 물론 스위스처럼 EU 회원국이 아니어도 여행객은 버스에 탄 채 간단하게 국경을 통과하곤 하지만, 터키에서 금세 그리스로 입국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하지만, 푸른색 바탕에 하얀 줄무늬가 그려진 그리스의 신선한 문양이 터키 국기와 달라진 모습이었다. 

우리는 교포 여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식사했는데, 그 여인은 그리스~터키를 여행하는 한국 여행객들에게 음식을 팔고, 국내여행사의 현지 가이드도 겸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한식이라고 내놓은 음식은 매우 엉망이어서 적지 않게 실망했다. 
밤 11시 15분에 출항하는 크루즈 승선 시간까지 3시간 남짓 우리 가족은 자유로이 키오스섬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팝에 들어가서 간단한 음료수와 맥주도 마시고, 또 군데군데 스냅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해가 진 상태에서 아기자기한 멋은 즐길 수 없었다. 

이윽고 승선 시간이 되어 거대한 크루즈를 타게 되었는데, 먼저 커다란 트레일러를 매단 트럭 등 컨테이너를 비롯하여 승용차들이 차례대로 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행객들은 한쪽 통로를 따라서 올라갔다. 객실은 9층까지 있어서 마치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처럼 올라가면서 각자 지정된 객실의 층에서 내렸다. 크루즈는 각층 중심부에 매점이 있고, 두 개의 통로를 중심으로 호텔처럼 양쪽에 객실이 배치되어 있었다. 객실은 출입문을 중심으로 한쪽에 2층 침대가 있고, 한쪽에는 화장실과 샤워실이다. 약간 비좁기는 했어도 방음시설이 완벽해서 배의 엔진소리는 물론 옆방 승객들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샤워를 하고 간단한 반바지 차림으로 밖으로 나가서 선실을 돌아보기로 했다. 바다는 칠흑같이 어두워서 눈요기만 했다. 선실은 층마다 중앙에 대형 TV를 향해서 영화관처럼 소파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객실을 예약하지 않은 여행객들은 이 소파에 기댄 채 잠을 자는 것 같았다. 

크루즈 일반실
크루즈에서 바라본 피에루스 항
피레우스 항

다음 날 아침 7시. 7시간의 항해 끝에 크루즈는 그리스 피레우스 항(Pireus: Piraeus)에 도착했다. 유럽의 발칸반도 끄트머리에서 그리스는 한반도처럼 삼면이 바다에 접해 있고, 1400여 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는 국토의 4/5가 산악지대이고 평야가 적어서 일찍부터 지중해를 통한 해상무역의 도시국가 폴리스가 발달했다. 아테네에서 남서쪽으로 약 10km 떨어진 피레우스 항은 BC 490년 아테네의 지도자 테미스토클레스가 지중해로 나가는 항구로 건설한 곳이다. 그리스가 지중해로 나가는 길목인 셈이다. 피레우스 항은 지중해를 제패하던 아테네가 쇠퇴하면서 쇠퇴했으나, 아테네가 그리스의 수도로 번성하면서 다시 성장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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