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서 충남농업기술원 종자관리소

 

5월이 되면 굳이 농촌이 아니더라도 골목의 담장 아래 작은 터에서도, 어느 주택 마당 한 켠에서도 감자의 작고 흰 꽃이 꼬물꼬물 보이기 시작한다. 감자꽃이 여기저기 피고 감자싹의 잎이 짙은 녹색으로 변하게 되면 여름은 시작되고 투덕투덕 비가 감자 잎새에 떨어지고 뜨거운 태양빛이 내려쏘이기를 반복하면 감자싹 저 아래 깊고 어두운 땅속에서는 드디어 먹기 좋은 크기의 감자알이 만들어지고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게 된다.

시골에서 농부의 자식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 감자는 여름날 빼 놓을 수 없는 간식이었고 부모님과 고향에 대한 그리운 추억의 매개체이다. 무더운 여름날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지를 즈음 마당에는 모깃불이 지펴지고 그 옆에 깔아 놓은 멍석위에 온 식구들이 모여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를 먹던 장면이 떠오른다.

소금과 당원을 넣고 가마솥에 살짝 눌러 붙게 쪄낸 감자는 적당히 짭조름하고 달달하며 그 고소한 향은 담장을 넘어 좁은 골목에 그윽하게 고이기 일쑤였다. 당시야 시골에 가게가 많은 것도 아니었고 또 귀한 과자를 사먹을 여유의 돈도 없는 집에서 감자는 그래도 아이들의 여름철 풍족한 간식거리였다. 그 흔한 간식거리가 어떤 연유로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알 이유도 없는 때였다.

하지만 이렇게 맛좋은 감자에는 영양소도 풍부하여 노화를 예방하고 항염증, 항산화 효과가 탁월한 비타민C가 대표적으로 존재하며, 이 비타민C는 감자의 전분과 결합하여 장에서의 흡수를 돕기 때문에 빈혈을 방지하는 데도 탁월하다. 채소류에 들어있는 비타민은 뜨거운 물에 데치기만 해도 많은 양이 파괴되지만, 감자는 전분입자들이 막을 형성해 비타민C의 파괴를 막아주기 때문에 찌거나 삶아도 그 손실이 크지 않다. 비타민C 외에도 감자에 포함되어있는 비타민 B1은 사과나 쌀의 3배를 함유하고 있어 탄수화물의 소화흡수에 도움을 주며, 다량 함유되어 있는 칼륨은 나트륨을 배출시키는 데 도움을 줘 소금 섭취가 많은 한국인의 고혈압 등 성인병 예방에 좋다.

감자의 열량은 밀의 5%, 쌀밥의 절반에 불과하고, 또 식이섬유는 장내에서 쉽게 소화되지 않아 포만감을 주어 식사량을 줄여주며, 장속의 좋은 세균의 활동을 증가시키고 장의 연동운동을 촉진시켜 음식의 노폐물을 쉽게 통과 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변비를 예방해주는 등 비만을 예방하는 데 탁월한 대표적인 다이어트 식품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감자의 파이토케미컬(천연생리활성물질)은 위염이나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같은 위장병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풍부한 파이토케미컬을 그대로 섭취하고자 한다면 감자생즙을 마시는 게 좋다. 이처럼 많은 감자의 장점이 있지만 주의해야할 사항도 몇 가지 있다. 높은 탄수화물 함량으로 비만체형이나 이미 당뇨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자 속 탄수화물은 혈당을 상승시키고 인슐린 수치에도 좋지 않게 작용할 수 있으니 비만이나 당뇨를 앓고 있다면 감자 섭취는 줄여주는 게 좋다. 또한 감자의 뿌리, 싹 등에는 독성물질이 들어있으며 햇볕을 오래 쬐거나 시간이 계속 경과하면 독성이 증가하므로 잎이나 뿌리, 싹은 제거해 주는 것이 좋다.

달리 간식거리가 없어서 흔하게 먹었던 감자, 몸에 어떻게 좋은지도 몰랐던 어린 시절의 감자, 지금도 감자는 여전히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다. 이렇게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감자를 다양한 먹거리와 자극적인 간식거리가 넘치는 지금, 내가 기억하는 나와 내부모님이 함께했던 한여름밤 감자를 먹던 그 멋진 장면을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넘겨줄 것인가. 이번 여름에는 감자를 쪄서 가까운 공원으로 나가봐야겠다. 어딜가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감자를 즐기긴 어렵겠지만 어쨌든 아이들에게 영양이 풍부한 감자에 대한 건강한 추억의 실루엣 하나는 만들어줘야지 싶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