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교통공단 대전세종충남지부 교수

매운 연기가 가득 채워진 가스실에 훈련병들이 입장한다. 매운 가스를 들이마시지 않기 위해 있는 힘껏 숨을 참아보지만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숨을 내쉴 수밖에 없다. 내쉬면 다시 필연적으로 들이쉴 수밖에 없는데, 호흡할수록 고통은 점점 더 심해진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눈·코·입에 쉴 새 없이 찾아오는 혹독한 화생방 훈련실. 이때 누군가 다가와 방독면을 씌워주고 정화통을 연결해준다면 어떨까.

막힌 숨이 트이고 혼미해진 정신이 돌아올 것이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단번에 멈춰준 구원의 손길이다. 화생방 훈련실의 방독면과 정화통은 도로 위 긴급자동차의 역할과 똑닮았다. 긴급자동차는 교통단속·범죄수사·인명구조·화재진화 등 긴급한 업무에 이용하는 소방차·구급차·혈액공급차량과 이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동차를 말한다. 긴급출동 후 귀소, 일반 행정업무 수행 등의 경우는 제외된다.

긴급자동차의 긴급 출동은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기도 하고 응급한 상황을 해결한다. 지금 이 시각도 긴급자동차로 인해 누군가와 그 가족의 삶이 달라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만큼 긴급자동차는 자동차관리법에 따른 긴급자동차로서 구조를 갖춰야 하며 도로교통법에 따른 우선통행과 특례를 적용받으려는 경우 사이렌을 울리거나 경광등을 등화해야 한다. 다만 본래의 긴급한 용도가 아니면 경광등이나 사이렌을 작동해서는 안 된다.

도로교통법 긴급자동차의 우선통행 조항에 따라 긴급자동차는 긴급하고 부득이한 경우 도로의 중앙이나 좌측통행, 도로교통법 또는 법의 명령에 따른 정지를 하지 않을 수 있으나 교통안전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긴급자동차에 대한 특례 조항에 따라 환자구호, 화재 진화처럼 긴급한 상황에 신속하게 출동하기 위해서 속도 제한, 앞지르기 금지, 끼어들기 금지에 대한 특례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 긴급자동차가 긴급 출동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도로 위 모든 차 운전자의 양보 의무 준수에 있다. 교차로나 그 부근에 긴급자동차가 접근하는 경우에 교차로를 피해 일시 정지해야 하고 이외 장소에서도 긴급자동차가 접근한 경우 긴급자동차가 우선 통행하도록 진로를 양보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 도로에서는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다. 긴급자동차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양보해주지 않아서 골든타임을 놓치게 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어 내 가족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긴급자동차의 안전이 곧 우리 모두의 안전이라고 여기며 남의 일이라고 선을 그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긴급자동차의 교통안전을 위해서 3가지 ‘E’를 두루 살펴보아야 한다. 일명 ‘3E’ 정책이다.

첫째 ‘E’는 처벌 강화(Enforcement)이다. 처벌이 강화되고 단속의 확실성을 높인다면 운전자가 교통 법규 위반 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긴급자동차의 우선통행을 방해하는 운전자, 불법주정차 차량에 대한 처벌 강화가 중요하다.

두 번째 ‘E’는 시설·공학적 접근(Engineering)으로 도로 시설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다. 긴급자동차의 진출입로를 마련하고 긴급차량 우선 신호 체계를 두는 등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마지막 ‘E’는 교육·홍보(Education)를 통해 도로 이용자의 의식을 개선하는 일이다. 세 가지 ‘E’ 모두 각각의 장점이 있어 안전한 도로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중 가장 장기적으로 확실하고 근본적인 해결점은 마지막 ‘E’를 통한 이용자의 마음 바꾸기에 달려있다.

긴급자동차를 바라보는 일반 운전자들의 근본적인 마음을 바꾸어 나를 살린다는 생각으로 양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눈물과 콧물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아비규환과 같은 화생방 훈련실에 갇혀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때 누군가 다가와 씌워주는 방독면 하나, 채워주는 정화통 하나, 그리고 떨리는 손을 꼭 잡아주는 손길 하나는 평생의 삶을 바꾸어 놓을지 모를 손길이다. 힘든 상황을 버티어가는 서로에게 그러한 손길이 되어주는 일, 긴급자동차의 우선통행을 지켜주는 길 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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