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일보-대전시 공동기획 : 2020 대전 청년을 말하다] 13. 마을활동가 김효빈 씨
  • 이준섭 기자
  • 승인 2020.07.12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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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정겨운 마을 되살린다
더불어사는 공동체 가치 찾으려
월평동 청년 4명 모여 의기투합
동네 곳곳을 누비며 전력투구중
주민들과 사소한 마을 문제부터
사회적 단위 문제까지 함께 해결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청년문제가 심각하다고들 말하지만 우리 사회엔 자신을 삶의 주체로 인식하고 꿈을 그려나가는 청년들도 많다. 이들은 ‘취직’으로 대표되는 정형화된 청년의 삶을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을 자신의 업(業)으로 만들어내는 청년들이다. 여기엔 소통과 협업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 ‘직업’인 경우도 포함된다. 청년의 삶에 있어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도전적인 대전지역 청년들을 만나 이들이 어떻게 사회 혁신을 이뤄가고 있는지 기록한다. 편집자

각박한 세상이라는 한탄이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인정은 사라지고 이웃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게 당연해졌다. 서로가 벽을 만들어 경계하고 차별로 점철된 일상을 사는 말 그대로 냉혹한 사회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고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꿰뚫고 있을 만큼 풍족하진 못해도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어제가 그리운 까닭이다. 그가 바쁜 일상을 벗어나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 ‘마을’을 누비며 전력투구하는 속사정이 여기에 있다. 마을활동가 김효빈(27·사진) 씨를 만났다.
 

◆ “내가 사는 마을은요”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나서는 순간 가족이 아닌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그 출발은 마을이다. 김 씨에겐 서구 월평동이 그렇다. 고향 경북 포항을 떠나 대학 진학을 위해 대전 '유학길'에 올랐던 그가 월평동에 둥지를 튼 건 3년이 채 안 된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네 곳곳에 덧대진 청춘들의 흔적을 보고 있으면 김 씨가 젊은 나이치곤 마을을 향한 애정이 누구보다 깊은 마을활동가임을 짐작게 한다.

“대학 때문에 포항을 떠난 후 충남대학교 근처에 살다가 졸업 직전에 이사했어요. 평소 공익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월평동으로 거처를 옮길 무렵 마을활동가들도 직접 만나고 마을 문제가 무엇인지 정보들을 알차게 수집했을 정도니까요.”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한데 모여 사는 곳을 지칭하던 마을은 시대 흐름과 맞물려 새로운 의미로 발전하고 있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경제·문화·환경 등을 공유하는 사회적 공간으로 범위를 확장해 나가고 있어서다. 뭇 사람들에겐 마을도, 마을활동도 자체가 퍽 낯선 탓에 그 정의를 오늘 뚜렷이 내리긴 어려우나 마을활동가 김 씨가 꿈꾸는 내일은 꽤 분명하고 명쾌하다. 그래도 아직 마을엔 사람 냄새가 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마을활동이 딱 정해진 게 아니에요. 주민과 마을활동가끼리도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저만의 생각을 묻는다면 마을활동은 정말 사소한 동네 문제나 사회적 단위에서의 특정 사안을 이웃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런 문제들 속에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공동체의 이익으로 이끌어주는 게 마을활동가의 역할이고요.”
 

◆ 월평동 청년들의 의기투합
그 말고도 월평동엔 청년 마을활동가들이 더 있다. 엄청난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활동공간이 보장된 것도 아니지만 마을을 위해 뛰는 일당백(一當百)의 기지로 가득 찬 청년들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월평동 변화의 물결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많을 땐 6명까지 모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저를 포함해 4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20대 후반~30대 초반으로 구성된 네트워크 조직이라 할 수 있는데 직장인 반, 프리랜서가 반이에요. 그중 한 사람이 남편인 건 비밀입니다. 마을활동에 제약을 두지 않는 편이라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자유이기 때문에 느슨할 수 있지만 다들 시간 쪼개가며 더 좋은 동네 만들겠다고 열심이랍니다.”

김 씨 말마따나 소규모의 마을활동 구조는 느슨한 네트워크로 이어질 염려를 안고 있지만 이들에겐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청년 공간조차 없던 동네에서 이들은 마을 정체성을 찾는 일을 제일 과제로 삼고 전력을 다했다. ‘월평(月坪)’을 아는 게 소통으로 공동체 문제를 풀어나가는 마을공동체의 출발이라는 확신에서다.

“처음엔 그냥 떠돌이였어요. 카페를 전전하고 마을활동가의 집에 신세를 지기도 했죠. 지난해 ‘월평둥지’라는 마을 공유공간이 생기면서 조금은 숨통이 트였습니다. 그 이후 마을공정여행도 기획하고 주민들이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교육콘텐츠 개발에도 도전했어요. 아이들을 위한 놀이콘텐츠, 동네 아름다운 장소를 사진과 영상으로 촬영해서 유튜브(You Tube)에 올리거나 엽서로 제작해 판매하는 활동도 펼쳤죠.”
 

◆ 마사회 시대 이후 내일의 월평
어느 곳이든 터줏대감을 제외한 청년들에게 마을이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안타까움이, 차분히 들여다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동네의 매력을 알지도 못한 채 떠난다는 사실이 그를 마을활동가로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

“월평동은 이야깃거리가 정말 풍부해요. 도솔산 아래 월평공원부터 습지·갑천·선사유적지처럼 자연환경부터가 멋들어지죠. 주민들 일상은 개성 많고 진한 사연으로 가득합니다. 월평의 역사를 간직한 채 운명을 향해가는 한국마사회 마권장외발매소와 관련된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일까. 김 씨는 요 근래 마사회 마권장외발매소 폐쇄 후 월평을 그려본다. 마사회 마권장외발매소 전후로 월평동이 적잖이 달라졌다는 게 그의 판단인데 무엇이든 간에 그날이 오면 일단 청년들부터 나서 머리를 맞대고 부딪혀 보겠다는 게 김 씨의 각오다.

“마사회 마권장외발매소가 들어오며 동네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교육문제나 경제적 영향, 인구구성도 그 전과 판이하니까요. 내년 상반기에는 폐쇄하는 걸로 아는 데 그때가 되면 청년들과 프리마켓이나 소소하게는 잡지·신문 만들기처럼 부담 없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싶어요.”

그러나 여기엔 전제조건이 달려 있다. 주민, 그리고 그들의 일상과 얼마나 통하느냐다. 마을활동가들이 아무리 다양한 활동을 하더라도 주민이 빠진 마을공동체는 ‘속 빈 강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가 인내와 낮은 자세로 끊임없이 주민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는 연유다.

“주민들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을 인식하기까지엔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무엇보다 마을공동체는 마을활동가 개념으로 접근할 경우 주민에겐 생소할 수밖에 없죠. 저는 이해하기 쉽고 흥미를 당길 수 있는 콘텐츠로 주민들에게 다가가려고 합니다. 마을의 문제를 찾고 해결하려면 사람과 사람이 네트워킹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게 중요하니까요.”
 

◆ 마을활동가, 그리고 ‘나’
대학 졸업 전부터 마을활동에 뛰어든 김 씨지만 그에게도 밖으로 차마 꺼내기 어려운 속앓이를 한 적이 있었다. 마을활동과 스스로의 삶 가운데서 방황했을 때가 그랬다. 지금이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그 순간은 이 일이 맞는지, 내 삶은 온전히 살아내고 있는지 갈팡질팡하느라 맘고생이 말도 못했단다. 숱한 고민 끝에 김 씨가 내린 결론은 쉬어가기였다.

“마을활동이 내게 어떤 변화나 이득을 안겨주거나 보람된 가치를 주는지에 대한 괴로움이 밀려왔던 거죠. 주민들을 만나는 게 좋고 의미 있는 일 한다는 게 뿌듯했는데 점점 나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거예요. 외부의 것만 챙기다 보니 스스로가 초라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오는 회의감 같은 것들이었죠. 그러다 결혼을 하면서 조금씩 답이 보이더라고요. 올해는 방향을 잠시 틀어 마을활동도 하고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다시 뛰어보렵니다.”

그가 마을활동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힘듦이 가져다주는 아픔보다 마을활동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 미래에 대한 불안 등 그만둘 사정은 많지만 그것들을 다 합쳐도 마을활동을 향해 있는 애착의 깊이가 이 일에서 김 씨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이다.

글=이준섭 기자 ljs@ggilbo.com·사진=함형서 기자 foodwork2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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