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반달

윤극영 작사·작곡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1절)
 

▣ 구름이 걷힌 7월의 파란 하늘에 보일락 말락 반달이 떴다. 나는 반달을 볼 때마다 ‘영원의 귀고리’라는 생각을 한다. 햇빛이 허공에 부서져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은 아무리 봐도 영원 그 자체다. 한 점 티끌도 없는 순수 그 자체인 하늘, 그 드넓은 영원의 바닷가에 작은 조각배처럼 희미하게 낮달이 떠 가물거리고 있으니, 반달은 영락없이 영원의 귀에 걸린 귀고리일 수밖에.

‘반달’이란 동요를 처음 알게 된 건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이 풍금을 치고 학생들은 선율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하굣길, 필통 소리 달각거리는 책보를 메고 집에 가면서 그 애잔한 선율을 콧노래로 되새김할 때 반달은 파란 하늘 어딘가에 떠 있었으리라.

윤극영 선생은 ‘반달’을 1924년 작곡했다. 많은 이들이 ‘반달’을 나라 잃은 우리 민족의 설움을 담은 곡으로 해석하지만, 창작 동기는 상당히 개인적이다. 1923년 21살이던 윤극영은 서울 삼청공원 근처 소격동에 살고 있었다. 그에겐 누님 한 분이 있었는데, 그보다 10년이나 위인 누님이 시집 가 고생만 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고 윤극영은 삼청공원에 가 남몰래 울었고, ‘반달’의 악상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고 한다. 새벽하늘에 은하수같이 엷은 구름이 깔려 있고, 그 너머 반달이 떠 있는데, 멀리 샛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누님을 잃은 슬픔 속에 태어난 ‘반달’은 나라 잃은 슬픔에 젖어 있던 온 겨레의 마음속에 파고들었다.

근대음악이 싹트기 시작한 1920년대 대중들에게 널리 불린 건 동요였다. 창가에서 대중가요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동요가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과 저항의식을 담아냈고, ‘반달’도 그런 작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나라 잃은 민족을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망망대해를 떠도는 조각배로 표현한 ‘반달’은 남북의 ‘겨레가 함께 부르는 노래 100곡’에도 선정됐다. 동요로는 ‘반달’과 ‘고향의 봄’이 만장일치로 추천됐다는데, 민족의 아픔을 동심의 세계에 얹어 많은 이들이 애창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반달’ 1절의 마지막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에 강하게 끌린다. 이 부분은 맨 첫 구절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의 이미지와 연결돼 험난한 바다를 헤쳐 가는 작은 조각배를 연상시킨다. 높고 애절한 선율에 실린 이 가사는 나를 한껏 창공에 밀어 올려 끝없는 영원의 세계를 그리워하게 한다.

그런데 왜 서쪽 나라일까? 일차적으로 달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많은 이들은 서쪽 나라를 우리 민족의 해방으로 보기도 한다. 나는 내 나름의 의문 속에 여러 상상을 하게 된다. 서쪽 나라는 어디일까? 그 나라에 가면 지금 내가 사는 이 나라에 없는 다른 무엇이 있을까? 동서남북 중 왜 하필 서쪽일까? 서쪽이면 해가 지는 방향인데, 혹시 죽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닐까?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서방정토의 세계?

‘서쪽 나라’라는 말의 자장은 나를 우주 공간에 펼쳐진 무한한 별만큼이나 상상에 상상을 거듭하게 했고, 다음과 같은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지. 우리나라 말이 우랄-알타이어(語)로, 우리 민족의 뿌리가 시작되는 곳이 우랄-알타이산맥 근처이니 서쪽 나라는 바로 그 지역 어디를 말하는 게 아닐까?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이 깃들어 있는 알타이산맥 부근.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나는 카자흐스탄과 몽골 사이 알타이산맥에 가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렇게 10년 넘게 달뜬 꿈 하나를 가슴에 품고 있던 차에 기회가 왔다. 몽골 고비사막 종주 여행 중 알타이산맥을 보게 된 것.

우리는 끝도 없이 펼쳐지는 알타이산맥을 끼고 차를 달렸다. 누런 모래사막 저편 높고 낮은 산의 굴곡이 검은 광목의 띠처럼 이어지는 알타이산맥. 차는 어느 산등성에 다다라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헐떡거려 사람들이 내려 차를 밀어야 하는데, 아 그때 올려다본 하늘의 샛푸름. 거센 바람에 메마른 풀잎이 사정없이 부대끼고, 한 점 티끌조차 없이 푸르기만 한 무한천공! 영원의 깊이로 빨려들어갈 듯 소용돌이치는 그 벽공의 하늘! 나는 그 산등성을 걸어 넘으며, 가슴 속 북받쳐 오르는 ‘반달’의 선율에 눈물을 흘렸다. 내가 그토록 상상하고 염원했던 ‘서쪽 나라’가 거기 있었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파란 하늘 물살을 찰랑찰랑 저어온 반달의 종착지가 그곳이라니.

나의 ‘반달’에 대한 해석과 감상이 너무 주관에 치우치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상자로서 가질 수 있는 권리로, 나는 ‘반달’을 통해 존재의 시원과 그로부터 번져나가는 상상력의 파동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좋은 작품은 사람의 정서를 맑게 하고 영혼을 고양시킨다. 우리가 문학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는 행위 혹은 그것을 감상하는 건 자신을 정화하고 타인의 영혼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다.

나는 지금까지 ‘반달’을 수백 번도 더 불렀다. ‘푸른 하늘 은하수’ 이 아련한 선율이 입가에 맴돌면 나는 어린 시절 꼬맹이로, 그리고 알타이산맥 산등성을 걷던 순례자 같은 여행객으로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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