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 문지초 교사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 없는 대화다.” 학창 시절, 역사를 배우는 첫 시간에 자주 등장했던 영국의 사학자 E.H.Carr의 명언이다. 너무나 익숙한 이 말이 그때의 나에게는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암기의 대상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 나는 역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외울 것이 너무 많은 단순하고 고리타분함 그 자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인식이 바뀌게 된 것은 내가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내가 학창시절 역사에 괴로움을 느꼈던 것처럼 우리 학생들도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에 본인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바로 흥미였다. 일단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해 스토리텔링 중심의 수업을 시도했다.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우리반 학생들을 수업에 활용했다. 예컨대, 청동기시대 잉여 생산물의 축적으로 인해 계급이 발생했다는 내용을 가르칠 때에는 우리반 김OO 학생의 부족과 박OO 학생의 부족으로 빗대어 설명했다.

참 단순한 설명인데도 학생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다. 학생들의 흥미를 고려한 또 다른 방법은 영화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삼국통일의 과정은 영화 ‘황산벌’의 일부를 활용했고, 임진왜란은 ‘명량’, 병자호란은 ‘최종병기 활’, 일제강점기는 ‘덕혜옹주’ 등을 활용했다. 영화를 통해 공부한 내용은 확실히 학생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것 같았다.

학생들이 어느 정도 역사에 흥미를 갖게 됐을 때 내가 시도한 다음 방법은 공감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수업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에 관련된 내용을 공부한 시간이었다. 당시는 평화의 소녀상이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던 시기여서 학생들의 관심도 매우 컸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그녀의 어린 시절 삶을 같이 상상해봤다.

“아마 가난한 집의 육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을 거야. 꿈이 많은 15살이지만 학교에 다닐 형편은 안되고, 일찍 돌아가신 엄마와 몸이 아픈 아빠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 돈을 벌어야 했겠지. 마침 마을 면장님이 월급을 많이 주는 좋은 공장에 취직을 시켜준다는 거야. 집을 떠나는 전날 밤, 그 소녀는 아마 낯선 곳에 간다는 두려움보다 돈 많이 벌어서 동생들 학교도 보내고, 맛있는 것도 먹일 수 있다는 희망이 더욱 컸겠지? 지금 화면에 나오는 할머니의 70년 전의 이야기야. 만약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면 어땠을지 우리 같이 이야기 나눠볼까?”

마음이 먹먹하여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고, 평소 장난기 가득했던 학생들도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역사적 사실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고, 과거와 대화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수업 중에 유일하게 눈물이 낫던 이 날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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