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

 

영국의 여성 작가 조지 엘리엇이 쓴 소설 ‘사일러스 마너’는 고향에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후로 돈만 추구하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돈을 모으기 위해 오로지 베 짜는 일에만 몰두하며 멈춤이 없었던 그는 날이 갈수록 몸이 꼬부라지고 오그라들어 점점 퀭한 눈과 야위어간 모습이 여간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게 아니어서 40세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동네 아이들은 그를 ‘사일러스 할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제 각계 전문가들의 돈에 대한 말씀들을 귀담아 들어 보자.

①우리는 너무나 세속에 묻혀있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벌고 쓰느라 힘을 헛되이 탕진하면서 눈부신 자연도 거의 보지 못하고 우리의 마음마저 버렸으니 이 비루한 흥정이여! (윌리엄 워즈워스/19세기 영국의 시인)

②부자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은 바보다. 만약 그가 주위 사람들보다 더 많은 금을 가지고 있어서 지위가 높은 것이라면 대체 그는 금광보다 얼마나 더 열등하다는 말인가? (제레미 테일러/17세기 영국의 종교인)

③인생에서 가장 좋은 상태는 질투 받을 만큼 부자도 아니고 넌더리가 날 만큼 가난한 것도 아니다. (조쉬 빌링스/19세기 미국의 작가) 마치 잠언의 말씀이 생각난다. “제가 허탕한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마십시오, 먹고 살 만큼만 주십시오, 배부른 김에 “여호와가 다 뭐냐?”고 하며 배은망덕하지 않게, 너무 가난한 탓에 도둑질하여 하나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잡 30:8~9)

④모든 거래마다 도움이 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현금, 다른 하나는 신용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탈프 히츠/20세기 미국의 사업가)

⑤탐욕은 가난을 쌓으나, 자애(헤세드)는 풍요를 준다. (독일 속담)

⑥돈을 버는 것은 기술, 돈을 쓰는 것은 예술이다. (김형태/21세기 한국의 교육학자) 돈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관대하고, 정직하고, 공정하고, 인내하며, 절약하는 것이지만, 돈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몰인정하고, 부도덕하고, 이기적이고, 무절제하고 방탕하며, 사치하는 것을 뜻한다.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고, 물방울이 모여 바다가 되듯이 푼돈이 모여 큰돈이 되도록 해야 한다.

⑦절약한다면 조금도 충분하다. 절약하지 않는다면 어느 것도 충분하지 않다. 절약은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준다. (주키우스 세네카/고대 로마의 철학자)

⑧1년에 20파운드를 벌어 19파운드 6펜스를 쓴 사람에게 남는 건 행복이다. 1년에 20파운드를 벌어 20파운드 6펜스를 쓴 사람에게 남는 건 고통이다. (찰스디킨스/19세기 영국의 소설가)

⑨만약 인간이 상호신뢰와 존경에 의해 발전되는 솔직한 친밀함을 놓친다면 인간의 인생은 불행해질 것이다. (랠프 에미슨/19세기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

⑩100달러를 110달러로 만들기는 힘들지만 1억 달러를 1억1천만 달러로 만들기는 쉽다. (에드지 브론프만/21세기 미국의 사업가)

⑪당신은 때론 바보 같은 일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바보 같은 일도 열정적으로 하라 (콜레트/15세기 프랑스 종교인)

⑫뛰어난 사람이 되는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큰일을 맡는 것으로, 원하면 종이 울리기 전에 집에 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해야 할 일을 많이 찾는 것으로 다른 사람이 퇴근한 후에도 남아야 한다. 전자를 택한 자는 한때 후자를 기회로 삼았기에 가능했다. (헨리 포드/20세기 미국의 사업가)

⑬돈을 두 배로 불리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돈을 반으로 접어서 주머니에 넣는 것이다. (샘 월튼/20세기 미국의 사업가)

⑭자선(헤세드)이라는 덕성은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두루 축복하는 것이니, 여러 미덕중 최고의 미덕이다. (윌리엄 세익스피어/17세기 영국의 극작가)

⑮향락을 자제하는 것만이 밑천이다. (토마스 브라쉬/21세기 영국의 소설가)

⑯돈을 버는 것은 바늘로 땅을 파는 것과 같지만 돈을 쓰는 것은 모래에 스며드는 물과 같다. (일본 속담)

⑰작은 지출을 삼가하라. 작은 구멍이 거대한 배를 침몰시킨다. (벤자민 프랭클린/18세기 미국의 정치가) 조선 영조 때 조륵이란 사람은 절약해서 이웃들에게 베푼 사람으로서 ‘자린고비’가 아니라 ‘慈仁考碑’로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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