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테베 성곽터
테베 왕궁터
암피온 무덤

BC 3000년경 고대 이집트의 나일강 상류 테베(Thebes)는 가장 번성했던 도시로서 남성적인 카르나크 신전과 여성적인 룩소르 신전, 왕들의 계곡, 왕비들의 계곡 등의 유적지가 있지만, 그리스에도 BC 2000년경 건립된 고대도시 테베가 있다. 아테네에서 서북쪽으로 차로 약 1시간쯤 떨어진 테베는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국가 중 가장 최초로 건설된 도시로서 테베에서 아테네, 스파르타 등 수많은 도시국가가 파생했다. 보이오티아와 아티카 지방을 가르는 키타이론 산맥 북쪽인 보이오티아 평원의 테베에 관하여는 그리스 신화에 많은 기록이 있다.

먼저, 테베는 페니키아의 티로스(Tyros)의 왕자 카드모스(Kadmos)가 세웠는데, 페니키아 왕 아게노르는 어느 날 에우로페(Europe)가 실종되자 카드모스에게 여동생을 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에우로페를 찾아 헤매던 카드모스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에 따라서 그리스 중부까지 이동해서 아레스의 아들인 용을 토벌하고 테베를 건국했다. 카드모스가 용의 이빨에서 환생한 부하 다섯 명과 함께 테베를 세웠다고 하는 건국 신화는 동방의 페니키아 세력이 용으로 의인화한 여성 토착세력을 정복하고, 다섯 부족과 연합하여 도시를 건설했음을 알게 해준다.

테베고고학박물관

그러나 카드모스는 아레스의 아들을 죽인 보복으로 8년 동안 아레스의 시종 생활을 했으며, 아테나 여신은 그를 카드메이아의 왕으로 삼았고, 제우스는 아프로디테의 딸 하르모니아와 혼인시켰다. 카드모스는 세밀레(Semele), 이노(Ino), 악타이온(Actaeon) 등을 낳았지만, 모두 불행한 죽임을 당했다. 세밀레는 제우스의 아기를 임신했다가 헤라의 꼬임에 빠져 죽었는데, 그때 제우스가 세멜레의 배 속에 있던 태아를 자기 허벅지에 넣고 기른 아기가 디오니소스(Dyonisos)다. 세멜레가 죽자 여동생 이노가 헤라의 눈을 피해서 디오니소스에게 여자 옷을 입혀서 키웠지만, 헤라에게 들키자 절벽에서 투신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디오니소스란 세상에 ‘두 번 태어난 아기’라는 의미라고 하며, 그는 풍요와 포도주의 신이 되어 혼미 속에서 세상을 살다가 죽었다.

또, 사냥을 좋아하던 악타이온은 아르테미스 여신이 목욕하는 것을 몰래 훔쳐본 벌로 사슴이 되어서 자기가 데리고 다니던 사냥개에 물려 죽었다. 그리고 카드모스의 아들 라이오스(Laios)왕과 왕비 이오카스테(Iocaste) 사이에서 태어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오이디푸스 신화는 사실 BC 8세기에 이집트를 여행하던 그리스인들이 찬란했던 이집트 고대도시 테베와 스핑크스의 신화를 전해 듣고 적당히 각색한 것이라고 한다.

테베박물관(뱀과 싸우는 카모스)
아레스부하 용을 죽이는 카드모스(헨드릭 골치우스)
테베박물관 자기

테베의 지형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서 7개의 문을 통하여 출입하는 구조인데, 고대 성채 카드메이아는 카드모스 왕이 짓고, 성벽은 암피온(Ampion)이 세웠다. 제우스와 테베 여왕 안티오페(Antipope) 사이에서 낳은 아들 암피온은 태어나자마자 산속에 버려져 양치기가 길렀는데, 암피온은 헤르메스로부터 수금(Lyra)을 배워서 유명한 연주자가 되었다. 그런데, 뤼코스가 안티오페 여왕을 축출하려고 하자 암피온 형제가 목동들을 이끌고 뤼코스를 물리쳤으며, 암피온은 안티오페의 뒤를 이어서 테베 왕이 되었다. 암피온이 성을 쌓을 때 수금을 연주하니 돌들이 저절로 움직여서 성벽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스 문명은 크게 BC 3300~ BC 2000년경 에게해의 30여 개 섬인 키클라데스 제도(諸島)에서 형성된 키클라데스 문명, BC 3650~ BC 1170년경 크레타섬의 미노스 문명, BC 1600~ BC 1100년경 그리스 본토에서 발달한 미케네 문명 등 셋으로 나누는데, 테베는 청동기 시대인 미케네 문명의 선형(線形) B문자 점토 토기들이 출토되고 있다. 또, BC 15세기 크레타 양식의 카드메이아 궁에는 크레타식 옷을 입은 테베 여인을 그린 프레스코벽화와 크레타식 항아리들은 테베와 크레타가 교류하였음을 말해주며, 1964년 메소포타미아의 원통형 인장(印章)의 발견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문자를 도입했음을 알게 해준다(2020.8.10.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 참조).

테베성곽 조각
테베 박물관 자기

테베는 BC 6세기에 보이오티아 동맹의 중심이 되어 아티카 지방의 아테네와 주도권을 놓고 대립했는데, 이런 갈등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가 BC 490년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할 때 마케도니아, 테살리아 등과 함께 페르시아군의 편에 서서 아테네와 스파르타 등과 싸웠다. 그러나 전쟁은 아테네가 지휘하는 그리스군이 승리했다. 이때 아테네군 전령이 아테네까지 약 40㎞를 달려와 승리를 알리고 쓰러져 죽은 것이 훗날 마라톤의 기원이 되었다.

BC 480년 8월, 페르시아가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한 치욕을 복수하려고 재차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그리스는 스파르타의 주도로 30개 도시국가가 동맹하여 육군은 스파르타가 지휘하고 해군은 아테네가 맡았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이 테르모필레(Thermopylae) 협곡에서 페르시아군을 막다가 전몰했으나, 바다에서는 아테네가 주도한 연합함대가 페르시아 해군을 물리쳤다. 테르모필레에서 레오니다스 왕의 혈전은 2014년 영화 ‘300’으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페르시아의 세 차례 침략전쟁은 50년 동안 계속되었으나, BC 448년경 아테네와 페르시아 왕 사이에 평화협정이 맺어졌다. 동서양 최초의 국제전쟁인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는 그리스의 민족적 단결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페르시아 주변에 있던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해방을 가져왔다(페르시아 전쟁은 2020. 7. 8. 그리스 개요 참조).

5. 오이디푸스(루브르박물관)
헤라클레스

그러나 이후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Peloponnesian League) 사이에 주도권을 놓고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BC 404)이 벌어졌다. 테베가 반(反)스파르타 연합을 구성하여 스파르타군을 대파한 레욱트라 평야에는 테베의 전승기념물(Leuctra Victory Monument)인 원통형 구조물에 방패 모양의 지붕 조형물이 있다. 이후 테베는 10년 동안 그리스 최강으로 군림했으나, 마케도니아에 패망하게 된다.

즉, 테베는 스파르타와 전쟁 때 마케도니아의 도움을 얻었는데, 강대국 테베에서 인질 생활을 하던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귀국 후 테베의 실정을 알고 공격하여 테베 북쪽 50㎞ 카이로네이아(Chaeronea) 전투에서 대패했다. BC 335년 필리포스 2세가 암살당하자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대량학살하고 도시는 철저하게 파괴하여 이후 그리스는 패권을 회복하지 못한 채 로마의 지배에 들어갔다.

테르모필레의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 동상

로마가 이탈리아의 중부에서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듯 동쪽으로 테살리아 지방, 북서쪽으로 델포이, 남쪽으로 아테네와 코린트로 가는 교통중심지 테베는 보이오티아주의 주도(州都)인데도 겨우 주민 3만여 명이 살고 있다. 테베는 도시 전체가 UNESCO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됐다는 것이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유물과 유적은 매우 빈약하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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