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대전구청장협의회장

[금강일보] 한여름 기세가 제 아무리 사나워도 계절의 변화는 이길 수 없는 모양이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다. 태풍이 걷히니 하늘이 더 높고 파랗다. 들판의 곡식은 누렇게 익고 있다. 그렇다. 가을이 온 것이다. 1년 중 가장 풍요로운 한가위, 중추절(仲秋節)이 어느새 목전이다. 여느 때라면 벌써부터 명절과 선물 준비에 몸도 마음도 분주했을 시절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가족과 친지 얼굴 볼 생각에 마음은 이미 고향으로 향했을 그런 때이다.

바람이 선선해지고 명절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기억, 생각나는 한 분이 있다.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고 도마동 축구공 공장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던 그야말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의 시절이었다. 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옛 충남도청에서 내려 또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어느 날 사장님이 부르더니 뜻밖의 선물 하나를 건넸다. 놀랍게도 그것은 자전거였다.

당연히 그 자전거는 가장 애용하는 교통수단이 되었다. 당시 대전에서 가장 가파른 곳 중의 하나였던 서대전육교를 단숨에 올랐고 내리막길에서도 페달을 신나게 밟았다. 핸들을 한 번도 잡지 않고 집과 학교를 오갈 정도로 자전거 타기의 ‘고수’가 되었다. 그때가 가을이었는지, 명절 무렵이었는지 기억은 불분명하다. 오래 전 너무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나왔기 때문일까? 힘든 시절을 견디게 해준 따뜻한 기억이기 때문일까? 이맘 때면 그 시절, 그 사장님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해 나는 대입 검정고시에 당당히 합격했다.

추석 연휴가 되면 귀성·귀경 차량이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다. 작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을 들고 고향을 찾는다. 온 가족이 모여 조상의 음덕을 기린다. 한가위에 건네는 안부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또 한 계절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그 시절 내가 받았던 자전거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평생 잊지 못할 응원과 격려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꽉 막힌 길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고향으로 향한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손주를 안는다. 그 힘으로 또 한 계절, 또 한 해를 견딘다.

올해는 사뭇 다르다. 아침저녁 살갗에 닿은 바람의 촉감은 그대로인데 예년과는 분위기의 온도 차가 확연하다. 명절을 기다리는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선다. 정부는 추석연휴를 코로나19 특별방역기간으로 정하고 전국에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 준하는 방역 조치를 적용하기로 했다. 대중교통 이용을 줄이고 밀집도를 낮추기 위한 대책을 추진한다. 이동을 최소화하고 가급적 집에 머무르며 휴식의 시간을 갖자고 요청했다. 온라인 성묘와 벌초 대행서비스 등 비대면 수단을 적극 활용해달라고 당부했다.

전국에서 산발적인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여전하다. 추석연휴가 재확산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축복받은 수확의 계절이지만 더 큰 결실을 위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래서 이번 한가위만은 진정으로 마음이 더 풍요로운 명절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장시간 코로나19와 싸우느라 지친 심신을 달래고 태풍과 수해로 입은 상처를 돌보는 재충전의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보름달처럼 크고 둥근 연대와 협력의 마음을 나누자. 몸은 떨어져 있으되 마음은 더 가까운 그런 가을을, 명절 연휴를 만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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