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준칙 규정 제정안 입법예고
검·경 조사받으면 무조건 입건
업무 과중에 인권 침해 소지까지

[금강일보 강정의 기자] 내년부터 검찰과 경찰에서 조사를 받으면 곧바로 입건(수사 개시)된다. 정부의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제정안 시행에 따라서다. 그러나 정작 수사를 개시하는 현장에선 인권 침해 소지 등 우려의 목소리가 적잖게 나오고 있다.

10일 법무부에 따르면 입법 예고된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제정안’ 제16조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에 착수한 때엔 수사를 개시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해당 사건을 즉시 입건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해당 조항엔 피혐의자의 수사기관 출석조사, 피의자신문조서의 작성, 긴급체포, 체포·구속 영장의 청구 또는 신청 등의 유형이 담겼다. 이는 기존 수사준칙 법령엔 없던 부분으로 규정 제정안은 16일까지 입법예고 기간을 거친 뒤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번 규정 제정안은 수사 과정에서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수사 절차의 투명성과 수사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문제는 검사나 경찰이 조사를 시작하면 의무적으로 입건하도록 한 거다. 현재는 피혐의자가 출석 조사를 받더라도 수사관이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면 입건하지 않을 수 있고 내사 종결을 할 수 있다. ‘내사’는 범죄에 관한 정보 취득이나 익명의 신고·진정, 풍문 등을 듣고 수사기관 내부에서 행하는 조사 활동 중 하나로 범죄사건부에 등재돼 사건번호가 부여되는 ‘수사’와는 다른 개념이다. 입건은 정식 수사 개시의 단계로, 입건되면 피혐의자는 피의자 신분이 된다.

이에 일각에선 범죄 관련성이 없거나 악의적 고발 사건의 피혐의자라도 출석 조사만을 이유로 무조건 강제 입건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검찰에 접수된 진정 사건(3만 5228건) 중 입건은 0.24%에 불과하다는 게 그 방증이기도 하다.

수사를 전담하는 현장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속속 나오고 있다. 대전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무분별한 내사를 방지하기 위한 근거로 출석 조사만 받아도 입건이 된다고 하는데 이는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며 “그간 사건의 사안 등에 따라 경찰은 그에 맞는 판단을 통해 수사를 벌여 왔다. 그러나 모든 조사가 입건으로 이어진다면 결국 경찰이 수사할 사건이 많아질 수밖에 없어 업무 과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무엇보다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 내부에선 제정안을 통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보단 재검토를 해야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정의 기자 justice@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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