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일보 이기준 기자] 2000년대 초반 열풍을 일으킨 ‘벤처 붐’은 새천년, 새로운 비즈니스의 신호탄이었다. 수많은 과학기술 기반 연구자들이 창업의 꿈을 안고 이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기술 상용화로 성장의 사다리를 타고 지속적으로 희망의 기지개를 켜는 벤처기업은 단 2%도 안 된다는 게 이 바닥 업계의 정설이다. 그럼에도 ‘모험’이라는 위험 부담을 안고 창업을 결심하는 건 그만큼 짜릿한 인생의 묘미가 있기 때문일 게다. 이는 ‘벤처기업’이 안고 있는 숙명과도 같은 이치다. 최호일(54) ㈜펩트론 대표도 선택의 기로에서 벤처기업 창업에 도전장을 던진 한 사람이다.

#. 기술 상용화를 위한 도전
펩트론이 창립한 게 1997년 11월이니 최 대표는 ‘벤처 붐’의 주역, 벤처 1세대다.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한 최 대표는 동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바이오벤처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LG화학 바이오텍(LG생명과학)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7년간 실험실에서 생화학 소재, 실험도구들과 씨름하면서 상당한 수준의 연구 성과물을 얻을 수 있었고 이런 과정이 쌓이면서 점점 모험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창업을 결심하게 된 거다.

물론 창업의 길에 들어서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지만 이에 못지않게 안정적인 삶을 원했던 아내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 만만찮았다. 아내를 설득하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다. 이렇게 최 대표는 연구 성과물을 사업화해 제품 박스에 자신이 설립한 회사의 이름을 박는 꿈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생명연 안에 마련된 창업공간에서 3명의 동료와 함께 자본금 1억 5000만 원으로 주문형 펩타이드 소재를 개발하는 일을 시작했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벤처창업, 그러나 펩트론 창업과 동시에 최 대표는 시련을 맞는다. 창업 관련 서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IMF 외환위기가 몰아친 거다. 금융권에서 자금을 융통해 사업화 장비를 구입하려던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결국 최 대표는 장비를 스스로 고안·제작해 어렵사리 사업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얻은 ‘원가절감형 펩타이드 고속합성기술’은 펩트론 성장의 든든한 주춧돌이 됐다.

#. 실력과 참을성으로 이겨낸 시련
창업 후 회사를 유지하는 것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연구 외에 신경을 써야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잘 모르니 서툴 수밖에 없었고 이런 시행착오는 경영성과에 고스란히 표출됐다. 투자를 받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했고 어렵사리 만난 투자자들도 사업제안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계약과 관련한 법적 지식도 어두워 제품 판매대금을 허공에 날릴 뻔한 일도 있었다. 매출 실적은 처참했고 그만큼 시련의 시기는 길어졌다. 최 대표는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길고 긴 창업의 열정을 생각하면 포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꾸준히 발품을 팔면 언젠간 기회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참고 견디며 ‘사업’ 하나만 생각했다.

시작부터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최 대표의 인내와 열정은 결국 기회를 만들어냈다. 주름 개선 펩타이드 소재, 아토피피부질환 보조제 등 신(新)기능성 소재 개발과 펩타이드 생산성을 500% 이상 향상시킨 초고속 자동합성기 개발, 독자적인 펩타이드 약물 전달 기술에 기초한 전립선암·말단비대중·2형 당뇨 치료제 개발 등을 통해 펩트론은 지속적으로 성장의 사다리를 탔다. 이 같은 성과를 토대로 펩트론은 2009년 현재 본사 및 부설연구소 자리에 번듯한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고 예상 시점보단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2015년, 꿈에 그리던 코스닥 상장도 이뤄냈다.

#, ‘펩타이드’라는 한 우물
펩트론(Peptron)은 ‘살아 있는 것(Pep)을 만든다(Tron)’는 의미를 담고 있다. 펩타이드와 연관된 연구가 펩트론의 기반이고 여기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한다. 펩타이드는 아미노산의 연결로 이뤄진 생체 물질로 일반적으로 아미노산 50개 이하의 구성을 펩타이드라고 하고 그 이상을 단백질로 구분한다. 펩트론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펩타이드 자동합성기(PeptrEX)로 1997년부터 5만여 종의 펩타이드를 자체 합성해 생산하고 있다. 전 세계 30여 국가, 500여 기업연구소, 병원·대학에서 펩트론의 펩타이드를 사용하고 있다.

펩타이드는 독성이 낮고 약효가 우수해 펩타이드 기반 의약품은 임상 성공 확률이 높지만 안정성과 경구이용률 측면에서 단점이 있어 주사제 형태로 자주 투여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1회 투여로 수개월간 약효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는데 펩트론은 ‘스마트 데포’(Smart Depot)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술은 1주부터 6개월까지 정밀한 약물 방출 제어와 재현성·생산성이 우수한 미립구 제형을 제조하기 위해 펩트론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로, 생분해성 고분자를 방출조절용 물질로 사용해 다양한 펩타이드 약물의 약효지속성 주사제 개발에 적용하고 있다. 기존 기술과는 차별화된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고효율 방식의 기술이어서 펩트론은 관련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를 확보하고 최근 이를 적용해 의약품 제조에 최적화 된 GMP용 초음파 분무건조기를 오송 바이오파크에 구현했다.

펩타이드와 약효지속성 기술을 바탕으로 의약품을 설계하고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현재 펩트론이 하는 일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 펩트론의 미션, ‘코지 큐어’
인슐린과 같은 당뇨치료제는 하루에 일어나서 한 번, 식사 후 한 번씩 약을 투약해야 한다. 하루 4번 주사를 맞게 된다. 1년이면 1460번이나 된다. 그러나 펩트론의 당뇨치료제를 사용하면 하루에 한 번만 인슐린 주사를 맞아도 된다. 정해진 기간에 몸에서 일정하게 약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기술을 고도화 하면 1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더 나아가 세 달에 한 번 투약하는 치료제 개발도 가능하다. 환자 스스로 투약이 어렵고 가족에게 고통을 주는 파킨슨, 알츠하이머 등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처방약에 대한 중복 처방과 남용 방지로 의료비 절감 또한 이룰 수 있다. “환자에게 고통스러운 치료는 치료제가 아니다. 환자가 편안하게 치료받는 권리를 위한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게 최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이유이고 이런 편안한 치료(Cozy Cure, 코지 큐어)가 곧 펩트론의 존재 이유다. 펩트론은 당뇨병치료제, 파킨슨병치료제, 전립선암치료제뿐만 아니라 최근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도 착수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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