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어릴 적 동경의 대상이었던 태권브이의 김 박사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맞춤의 해결책을 내놓는, 모르는 것이 없는 존재였다. 막상 박사학위를 받고 보니 김 박사와는 거리가 있는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나름 교육과정과 연구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전문가라 자임하는 분야에서 모르는 것이 또렷해졌을 뿐만 아니라 관련 분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자세히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모르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첫 번째 본인의 연구분야에서 모르는 것은 미지(未知)라 할 수 있고, 두 번째 다른 분야에서의 모름은 무지(無知)로 구분할 수 있다. 공부나 연구를 깊이 있게 지속할수록 미지는 더욱 뚜렷해진다.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이고,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이다’를 구분 지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지에 대한 해소책은 연구를 통해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무지는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두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깨우치는 적극적인 대응을 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무지 상태로 남겨두어야 한다. 무지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무식이나 무도로 파급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타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이 글을 빌려 필자는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새로운 분야를 접할 때 느끼는 생경함은 당연하지만, 박사급 연구자라는 자만이 작동하면 자신의 무지에 대해 인정하기 힘들다. 일상은 물론 연구데이터에 대한 토론에서도 불쑥 튀어나오는 새로운 용어를 접했을 때 첫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박사면서도 이걸 모른다’라는 티를 내지 않고, 아는 척하며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부끄러움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욱 견고한 감정적 장벽이 되어 무지를 인정할 수 없게 만들고, 때로는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게 한다.

올해 최고의 화두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전공이 아닌 필자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일부 뉴스나 소셜네트워크에서 접한 정보를 통해 한평생 바이러스를 연구해온 과학자 이상으로 전문가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이런 엉터리 전문가가 시급한 국가 차원의 전염병 방역 상황에서 잘못된 정보를 퍼트려 사회적 공황을 조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본 것, 들은 것이 아는 것으로 둔갑하는 경우를 빈번히 볼 수 있다. 어떤 이야기 주제가 나오더라도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이들은 한마디로 ‘아무것도 모르는 이’라고 필자는 단정한다. 이들은 대개 새로운 주제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모른다는 부끄러움으로 대화나 토론에 있어서 아는 척 잠자코 있다고 해서 모르는 것이 아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수년 전 새로운 연구주제로 변경하면서 필자가 처음으로 맞부딪친 장애는 익숙지 않은 실험의 숙달이나 이론 습득 이전에 무지에서 오는 부끄러움을 이기는 것이었다. 선배나 동료 연구자들에게 묻는 것이 단연 지식을 습득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수년간의 감정 훈련을 통해 필자가 느끼는 큰 변화 중 하나는 부끄럼 없이 ‘나 이거 모르는데’ 라고 무지를 자랑하는 화법을 구사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분야를 접하는 데 있어서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허함만큼 좋은 자세가 또 있을까? 잘 모른다고 선언하고 도움을 구하러 오는 사람에게 핀잔을 주는 사람은 흔치 않다.

새로운 분야에서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앞서 지식이나 정보를 접한 이에게 도움을 구하라. 새로운 분야에서 생소함은 당연한 것이며, 모른다고 인정하고 질문하면 해소될 수 있는 부분이다. 당신이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은 ‘내가 모른다’라는 것이 아니라 무지를 인지하면서도 사소한 감정적 장애로 인해 묻고 배울 수 없는 상태에 있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엉터리 전문가의 모습일 것이다. 당신이 ‘잘 모른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는 자세’로 변화를 시작할 때 필자는 ‘드디어 당신이 새로운 분야를 배울 준비가 됐다’라고 힘찬 박수를 보낼 것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