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물줄기 바꾼 10·26…김삼웅 前 독립기념관장 ‘김재규 장군 평전’ 발간

 
 
 
 

[금강일보 최일 기자] 10·26 사건으로 그가 처형에 처해진 지 어느덧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야수(野獸)의 심정으로 유신(維新)의 심장을 쐈다”고 한 김재규는 혁명가인가, 반역자인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쓰러지며 18년의 군사독재도, 유신체제도 막을 내렸다. 김재규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박 대통령의 희생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그는 박정희의 ‘정치적 사생아’인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 24일 10·26 거사를 실행한 부하들과 함께 사형 당해 생을 마감했다.

박정희 대통령 저격 상황을 현장검증하는 김재규.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후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뀐 2020년 10·26을 앞두고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김재규 장군 평전’(도서출판 두레)을 펴냈다.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 탈취를 목표로 김재규 등을 하루빨리 처형한다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고, 군사재판부는 그들의 하수인 노릇에 충실했기 때문에 재판 진행과 사형 집행을 서둘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유신체제와 군사독재의 심장이 멈췄지만,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군사독재체제가 이어졌고, 자유민주주의는 회복되지 못했다.

법정에서 진술하는 김재규.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김재규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평가는 여전히 극과 극이다. 자신을 ‘군인이자 혁명가’라고 칭한 김재규에 대해 한편에서는 ‘시해범(弑害犯)’, ‘반역자’라 비판하고, 다른 한편에선 ‘독재자를 처단한 의인(義人)’으로 칭송한다.

저자는 군사독재에 저항한 민주화투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막상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한 주역에 대해서는 평가를 건너뛰었다며, 이는 ‘국가원수 살해’라는 도덕적 감성주의와 함께 유신세력과 족벌언론의 세뇌 탓이라고 분석한다. 김재규는 3심 재판에서는 졌지만 4심인 하늘의 심판, 즉 역사의 법정에선 이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역사의 법정은 40년간 굳게 닫혀 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저자는 “우리는 김재규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다. 그가 있어 철옹성과 같은 유신체제를 한순간에 허물었다”며 김재규를 역사의 법정에서 재평가하고, 역사의 시각으로 10·26을 바라볼 시간과 공간이 됐다고 주장한다.

최근 공개된 10·26 재판 당시 김재규 육성 자료에 따르면 재판관들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 것이 아니라 뒤에서 조종하는 대로 판결했고, 공판조서도 허위로 작성됐다. 김재규의 예언대로 역사의 법정에선 그와 부하들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제4심은 하늘의 대행자인 의로운 사람들의 몫입니다. 따라서 김재규의 ‘재심(再審)’과 ‘복권(復權)’은 민주시대를 사는 깨어있는 사람들의 ‘빚 갚음’이며 ‘역사정의’를 실천하는 길입니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