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민 한밭대학교 인문교양학부 조교수/(英)옥스퍼드대 OIPA 겸임연구원

[금강일보]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위험사회(Risk Society)’에서 현대사회의 위험이 사회발전에 따라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과거의 위험이 자연 재해처럼 주로 인간의 통제 밖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던 것과 달리 현대사회의 위험은 인간이 만들어낸 위험이라는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위험사회의 대표 사례로 주로 과학기술 발전이 초래하는 위험을 꼽는다.

물론 나는 인류가 누리는 풍요와 안녕이 과학기술의 발달 덕분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이 늘 긍정적인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에 배태된 내재적 위험을 인간이 모두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미 포착된 위험에 대한 대응에도 엄연히 한계가 존재한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 오염수 처리 문제가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은 2011년 사고 발생 후 가동을 멈췄지만 재앙은 아직 진행 중이다. 원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하루에 약 170톤의 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곧 오염수도 매일 그 정도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 8월 중순 도쿄전력 발표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1-4호기 저장 탱크에 담긴 오염수는 약 123만 톤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삼중수소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존재하는 유일한 방사성 핵종이라고 발표했다. 그들은 62개의 방사성 핵종을 제거할 수 있는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오염수를 기준치 이하로 정화했기 때문에 바다에 방류해도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러한 방법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인정한 것이므로 자신들의 결정이 정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전에서 발생한 오염수를 기준치 이하로 희석하면 바다에 방류할 수 있다고 IAEA가 인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IAEA의 기준이 일본의 결정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한다는 일본의 주장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기준치 이하로 정화되었다는 전제를 만족시켰을 때에만 참이 될 수 있다. 나는 일본 정부가 IAEA의 권위를 악용하며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다고 확신한다.

베타 방사선을 방출하는 탄소-14의 경우만 봐도 일본의 뻔뻔한 행각은 금방 드러난다. 일본이 적용하는 ALPS가 탄소-14를 제거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과학기술계의 통설이다.

그리고 올 10월 말 발간된 ‘2020년 조수(潮水) 확산 방지: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위기의 현실’이라는 그린피스(Greenpeace)의 보고서도 일본의 주장이 어불성설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피스는 삼중수소 정화에 집중하는 일본의 주장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존재하는 플루토늄, 요오드, 스트론튬 등 삼중수소 이외 방사성 물질 논란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지적한다.

오염수에는 반감기가 5730년인 탄소-14, 반감기가 30년으로 탄소-14보다 짧지만 향골성핵종(bone seeking isotopes)인 스트론튬-90, 반감기가 2만 4500년인 플루토늄-239뿐만 아니라, 반감기가 1400만 년에 달하는 요오드-129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오염수가 바다에 방출되면 먹이사슬을 통해 결국 인간의 DNA를 손상시키는 대재앙을 맞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임시적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본 정부가 일본어업협동조합의 반발에 부딪혀 올 10월 27일에 방류 결정을 하기로 한 계획을 일단 미룬 것이다. 그러나 오염수 방류 결정 연기가 곧 방사성 물질의 위험성을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가 우선 소나기를 피한 후 어민들의 보상 계획을 강화하여 천천히 반대를 무력화할 것이라 내다보기도 한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 근거는 아직 없으므로 일본 정부의 움직임을 예단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지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짓이다.

벡이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진단한 것은 결코 한 국가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었다. 세계화의 거친 파고에 따라 이미 위험의 세계화도 진행된 지 오래다.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국가는 없다.

따라서 위험의 세계화에 따른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반드시 세계적 차원에서 이뤄져야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한 국가만 대응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다를 바 없다.

정부는 일본의 사기 행각이 글로벌 위험사회를 더욱 악화시킬 것임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글로벌 대응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사태가 지금의 단계까지 다다른 상황에서도 정부가 조용한 외교를 고수한다면 반드시 실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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