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산소에 갈 때면 빼놓지 않는 물건이 있다. 담배다. 상석(床石)에 술과 담배를 올리고 절을 하는 사람. 특별한 사연이 있다. 어머니는 생시에 밥보다 담배를 좋아하셨다. 불의의 사고로 생때같은 두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는 자식 생각만 하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여 혼절하기도 했다. 자식 잃은 슬픔을 달랠 수 있는 약은 어디에도 없었다. 옆에서 누군가가 권하는 담배가 유일한 약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어머니가 담배를 피우게 된 동기였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담배 없인 못 살았다. 밥은 굶어도 담배를 가까이 하지 않고는 살아가기 어려웠다. 담배는 이런 분들에게는 기호품이 아니다. 약이요, 생명과 같은 곡기(穀氣)다. 이 세상에 ‘담배를 피워도 좋은 사람’은 이렇게 가슴에 큰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분들은 언제 어디서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 피워도 용납이 된다. 또 있다. 뜻하지 않은 수마(水魔)가 집과 농토를 덮쳤다. 가재도구도 싹 쓸어갔다. 생의 터전으로 평생 일구고 살았던 농토는 자갈밭으로 변해 버렸다. 하룻밤 사이에 날 벼락이었다. 허망한 일이다. 망연자실, 삽자루를 내려놓고 먼 하늘을 응시하는 한 노인의 입에 담배가 물렸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해 볼 수 없는 재해를 입은 농부에게는 오직 쓴 담배 한 개비가 약이다. 착하게 살아 온 사람들. 그러기에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가슴에 끓어오르는 불덩이(火)를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약이 담배다. 재해로 조상의 산소까지 잃어버린 참담한 비극 앞에서 백 마디의 위로가 무슨 소용이랴. 말을 잃은 한 노인이 허공에 날리는 처연한 담배연기는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의 언어’다. 그에게 담배를 왜 피우느냐고 책망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얼마 전 문인들과의 모임에서 골초인 K시인에게 이렇게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두 가지의 예’를 들면서 “어느 쪽에도 해당이 안 되면 담배를 당장 끊는 게 좋다”라고 조금 심하게 말했다. 굳은 얼굴로 듣고만 있던 K시인이 드디어 내게 물었다. “그럼 윤 선생은 어떻게 담배를 끊었소?” 막무가내로 담배를 끊으라고 잔소리하는 아내의 지긋지긋한 ‘압박’보다 나의 이런 ‘단연(斷煙)권유’가 더 무섭다고 말했다. ‘담배를 어떻게 끊었느냐’고 물어 주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반갑다. 벌써 많은 이들에게 내가 성공했던 효과적인 단연방법을 설명해주었지만 백 번, 천 번 또 다시 설명해주어도 지겹지 않다. K시인의 시가 왜 좋은지 나는 안다. 그의 시가 왜 사람들의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지 난 안다. 그와 함께 종종 술을 마시면서 나누는 이야기 속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보석 같은 게 숨어 있다.맹물과 같이 싱겁고, 때로는 누구나 다 구사할 수 있는 평이(平易)한 언어인데도 그의 시어(詩語)를 가만히 뜯어보면 철학이 들어 있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약과 같은 묘한 마력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 내가 말해 주고 싶은 ‘담배 쉽게 끊는 방법’도 그에게는 어쩌면 맹물과 같은 싱거운 방법인지 모른다. “물을 자주 마시세요. ‘물 먹는다’는 말이 나쁘게만 쓰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물 마시는 방법 보다 과학적으로 더 좋은 단연방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담배는 ‘습관’이거든요. ‘중독성’이란 말입니다.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마다 무조건 주전자 있는 데로 가서 물을 컵에 따르세요. 마시고 싶든지 마시고 싶지 않든지 무조건 입에 갖다 대세요. 한 모금이라도 체내에 흘러 들어가기 마련이지요.그러면 됐어요. 하루에 골백번도 좋아요. 소위 ‘금단 현상’이 나타나 담배를 피우고 싶어 미칠 때에도 반복하세요. 물을 마시면 어떻게 됩니까? 자연히 배설하게 되지요. 40여년 찌든 니코틴이 내 몸 속에서 알게 모르게 빠져나간다 이 말입니다. 이렇게 닷새만 해보세요. 구수하던 담배연기가 조금씩 역겨워질 겁니다.” 그 후 한 달 쯤 지났는데 K시인한테 전화가 왔다.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는 것이다. 내가 오히려 고마운 생각이 들어 ‘축하 술을 사겠다’고 하자, 그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들이 정력을 보강하려고 온갖 보약은 잘도 사먹는데 정력 감퇴요인이 되는 담배를 왜 못 끊는지 모르겠어요.” 벌써 체력까지 좋아졌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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