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물납제 대상에서 ‘미술품’ 빠져
대전문화예술계 공론화 필요성 제기
“예술작품의 보존과 활용법 고민해야”

사진출처=연합뉴스
사진출처=연합뉴스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들이 고인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미술품을 기증하기로 하면서 지지부진했던 물납제 도입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지역에선 미술품 물납제의 제도화와 함께 한국미술의 보존 방향을 거시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문화예술계의 시선이 ‘이건희 컬렉션’에 쏠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술계의 반향은 가히 대단하다. 이 회장 유족들이 국립미술관에 기증키로 한 미술품의 수만 2만 3000여 점에 감정가만 2~3조 원, 시가로는 10조 원대로 추정되는데 고미술품은 물론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서양화, 국내 유명작가의 근대미술 작품을 비롯해 국보 등 지정문화재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 유족들이 고인이 수집한 다량의 미술품을 기증하기로 한 것은 막대한 상속세에 대한 부담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에서 세금을 현금 대신 물건으로 내는 물납제 대상은 부동산과 유가증권, 비상장주식으로 한정돼 있다. 미술품은 시장에 되팔아 현금화 한 뒤 세금을 내는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문화예술계에선 미술품 상당수가 상속 과정에서 처분돼 뿔뿔이 흩어지는 사례를 막기 위해 물납제 도입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지역에서도 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더 늦기 전에 국가가 예술품을 관리함으로써 해외 반출을 막고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확대하는 제도의 장점, 가치 평가가 어렵다는 단점 등 물납제가 가진 일장일단(一長一短)을 살펴보자는 생각에서다. 라영태 대전미술협회장은 “감정이나 금액으로 이를 환산하는 게 쉽지 않다는 문제점들이 제대로 맞물려 돌아간다면 미술품 물납제가 순기능할 것이라고 보지만 어쨌든 문화유산이라는 중대성이 있기 때문에 숙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미술을 떠받쳐 온 원로 작가들이 작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물납제에 한정된 미시적 관점을 넘어 예술작품의 보존과 활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은 “대전을 예로 들면 원로들이 돌아가실 경우 그분들이 남긴 작품을 어떻게 보존하고 문화진흥의 측면에서 활용할 것인지 논의해보자는 것”이라며 “단순하게 이건희 컬렉션이 쏘아올린 미술품 물납제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이참에 우리나라 근·현대미술 100년 동안 축적해 온 예술작품의 체계적인 보존과 활용을 위해 시스템을 확실히 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