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 화백의 문자추상’ 특별전
회화에서 출발 다양한 매체로 확장
류철하 관장 “한자로 예술적 정체성 세워”

종이에 먹으로 표현된 이응노 화백의 필체와 군상. 이준섭 기자
종이에 먹으로 표현된 이응노 화백의 필체와 군상. 이준섭 기자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1960년대 초 회화에서 시작된 이응노 화백의 문자추상 양식은 이후 조각, 판화, 도자 등 다양한 매체 속에서 전개된다. 이러한 흐름은 그의 작품 생애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문자, 문양, 패턴: 이응노의 문자추상’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이응노미술관을 찾아 그의 실험적 작품에 담긴 문자추상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아본다.

이응노의 문자추상의 출발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9년 서독 카셀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도큐멘타를 통해 최신 현대미술을 접하고 ‘용구(用具)의 혁명’을 언급하며 창작 방식을 대담하게 실험하기 시작하면서다. 종이에 채색을 하거나 캔버스에 유채된 1전시실에 걸린 작품 ‘구성’은 문자추상 초기에 재료와 기법을 서로 다르게 창작한 이응노 화백의 창의적 방식이 돋보인다. 여기에다 아교나 한지 등의 재료로 화면을 밀도있게 구성하고 그림 표면을 긁거나 구기는 등 거친 작업을 통해 때론 갑골문처럼, 때로는 고대 비석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시선을 끌어낸다.

거침과 유연이 어우러지던 그의 문자추상은 1970년대 들어 입체적으로 변신한다. 2전시실에선 한자 획 하나하나에 묻어있는 구조 그 자체를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한글 자모의 직선과 곡선이 만들어내는 단순한 형태를 조형적으로 창작한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과거 회화 안에서 이뤄지던 문자추상이 시간 흐름에 따라 조각, 판화, 도자 등으로 다변화한 것인데 1960년대 후반부터 도자와 접시 문양은 문자추상을 도안으로 사용하며 이응노만의 파격적인 미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1980년대 그의 문자추상은 판화로도 영역을 확장한다. 이 무렵 이응노는 문자와 그의 대표작인 ‘군상’을 소재로 창작에 몰두한 모양이다. 3전시실에는 이응노가 왜 동양 문화를 이루는 상징과도 같은 한자를 문자추상의 기본으로 이해했는지 넌지시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펼쳐져 있다. 특히 전각 형식을 활용한 판화 작품들은 문자추상이 비록 서구의 양식을 취하고 있지만 방법에 있어선 전통미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4전시실에 들어서면 말년의 그가 주로 군상 연작 창작에 매진했지만 그러면서도 꾸준히 문자추상에 관심을 기울였음을 짐작할 만한 작품들을 마주하게 된다. 다양한 필체를 통해 문자를 실험하고 있는 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한자는 물론 아랍어 글씨의 곡선을 그림 소재로 실험하기도 했으며 한자를 대담하게 그림문자 형식으로 변형, 픽토그램처럼 쓰기도 했다. 글씨를 쓰듯 인물을 그려나가는 군상의 작업 방식이 서예의 필법, 그 중에서도 초서체와 유사한 점이 있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류철하 관장은 “이응노는 한자가 자연의 형상을 추상화한 글자라는 점에 착안해 이를 동양적 추상이라고 봤고 그것을 통해 서구 예술가들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예술적 정체성을 세웠다”며 “쓰기가 그리기가 되는 지점에 이응노의 문자추상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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