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금강일보]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고, 지난 1일은 올해로 11회째를 맞은 ‘의병의 날’이었다. 의병의 날은 의병(義兵)의 역사적 가치를 일깨워 애국정신을 계승하고자 제정한 법정기념일로, 2008년 8월 경남 의령군수 등 1만 5586명이 ‘호국의병의 날’ 제정을 국회에 청원, 2010년 2월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호국보훈의 달 첫째 날인 6월 1일이 의병의 날로 지정됐고, 2011년 제1회 의병의 날 기념식이 의령에서 열렸다.

의병이란 국가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국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국민이 자발적으로 조직하는 자위군을 말한다. 의병의 전통은 이미 삼국시대에서 비롯됐고, 고려·조선시대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조선 말기의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됐다.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박은식(朴殷植) 선생은 “의병은 우리 민족의 국수(國粹)요, 국성(國性)이다”라고 하면서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즉, 우리 민족은 역대 항중·항몽·항청·항일의 투쟁 속에서 무력이 강한 국민성을 갖게 됐고, 이 때문에 어느 침략자로부터도 정복당하거나 굴복해 동화되는 일이 없었다. 의병의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활동을 보여준 것은 임진왜란·병자호란, 그리고 한말의 의병이었다.

충청도 의병은 홍성, 청양, 제천, 옥천을 중심으로 활약했다. 충청도에서 활약한 류인석, 박세화, 조헌, 김복한, 최익현, 민종식 등 수많은 의병 중에서 제10회 의병의 날을 맞아 가장 주목하는 의병은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 1834~1910) 선생이다. 왜냐하면 그가 지은 절명시(絶命詩) 원본이 111년 만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박세화 선생은 월악산 용하동에서 용하영당(用夏影堂)을 창건하고 충북 제천에서 많은 문인들을 지도했다. 1905년 춘추대의 정신으로 월악산 용하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제자들과 함께 8개월간 조선헌병사령부에 연행돼 구금되기도 했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자 “글 읽은 선비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라며 23일간의 절식 끝에 순국한 선비정신의 표상이자 한말의 대유학자다.

絶命詩(절명시)

白頭山色映蒼空(백두산색이 푸른 하늘에 비치니)
華夏一區箕子東(중화의 한 구역 기자의 동쪽이구나)
齊月光風何處在(밝은 달 맑은 바람 그 어디에 있는가)
沒人氛祲太濛濛(사람을 죽이는 나쁜 기운이 너무 심하구나)
道亡吾奈何(도가 망했는데 내 어찌해야 하는가)
仰天一慟哭(하늘을 우러러 보고 한바탕 크게 통곡하노라)
自靖獻聖賢(자정하여 성현께 내 몸을 바치니)
嗚呼君莫惑(오호라! 그대들은 미혹되지 말지어다)

의당 박세화 선생이 경술 8월 8일 지은 절명시 유묵(遺墨)은 죽음으로 완성된 글씨이기에 더욱 애절하고 아름다우며, 그의 순국이 시를 빛나게 하고, 또 글씨가 다시 그의 이름을 빛나게 한다. 그는 1904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9곡에서 제자 200여 명의 유림을 모아놓고 화양강회(華陽講會)를 개최, 내 고향 괴산 청천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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