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대전문인총연합회 명예회장

[금강일보] 신록의 유월이 왔다. 그러나 유월은 그냥 유월이 아니다.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던져주는 유월이다.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위해 살다가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을 생각하면 굳이 국립현충원에 가지 않아도 마음이 경건해지는 계절이 아닌가! 올해도 필자는 지난 현충일에 조기를 게양하고 옷깃을 여미며 먼저 가신 순국선열들을 가슴에 담고 하루 내내 그 임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보냈다.

하지만 유월은 현충일 하루가 아니고 한 달 내내 가신 임들을 그리며 살고 싶어진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평화로운 세상, 그 안에 필자와 같은 행복한 개인의 삶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필자의 마음이 우울해진다. 아니 스스로가 송구해진다. 임들께서 몸을 바쳐 지킨 조국을 지금 잘 붙들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죄송스러워진다. 제대로 예우를 하고 있는지 그것도 송구하다. 수학여행을 가다 해상사고로 세상을 뜬 학생들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는 호국영령들도 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필자도 그런데 유족이 느끼는 상실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조국을 지키다가 산화한 천안함 용사들이 문득 떠오른다.

임들의 거룩한 희생과 나라사랑을 칭송하지는 못할망정 그건 순국이 아니고 함선이 좌초해 일어난 단순 해상사고일 수 있다며 재조사를 하자고 우겨대는 무리들을 떠올리면 울화가 치민다. 어쩌다 이 땅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이념이 다른 종북 좌파세력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 됐는지를 생각하면 참담해진다.

우리가 지금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평화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살면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호국영령들이 계셨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오늘날처럼 인간이 존엄성을 누리면서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들의 희생 덕분이다. 임들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거룩하게 살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호국영령으로 받드는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가깝게는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 애국애족하며 나라를 되찾게 해준 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그 어수선한 때에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정부가 있었고, 한국전쟁 당시에 국군들의 순국과 유엔군의 참전으로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지켰기에 대한민국은 번영을 누리며 자유로운 삶을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만약 나라를 잃었다면 우리는 자유를 잃고 삼대째 내려오는 북한 김 씨 일가의 통치를 받으며 찌든 가난 속에 절망적인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군부의 개발독재 과정도 우리는 인정을 해줘야 한다. 그건 역사요, 팩트다. 일부 세력들은 군사정권의 역사를 애써 지우려 하지만 그 정부가 새마을운동을 전개하고 경제를 발전시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기에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현 정부도 출범 초기에는 다함께 대한민국을 일구자며 화합과 단결을 강조했다. 검찰총장을 임명할 때에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수사해 나라를 바로 세우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오만과 독선에 빠졌다. 상식과 공정을 잃었다. ‘내로남불’이라는 사자성어가 외국 언론에까지 회자되는 나라가 됐다.

대한민국은 호국영령들이 지켜준 나라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세월호 촛불혁명이 세워준 정권이라고만 믿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촛불은 단순히 수학여행을 가다 사고로 숨진 학생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촛불이 아니다. 보다 근원적이고, 보다 정의로운 세상이 되게 해달라는 뜻이 더 많이 담긴 촛불이었다. 우리는 호국영령 앞에서 부끄러운 짓을 해선 안 된다. 그래서 이 유월에는 호국영령 앞에서 옷깃을 다시 여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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