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

[금강일보] 어느새 산과 들이 다채로운 빛깔에서 온통 초록색으로 뒤바뀌고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달구고 있다.

그처럼 우리 인간사회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일시적인 퇴보는 있었지만 후시대가 전시대보다 질적인 면에서 나아져 왔음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고 현실의 모순에 대한 개혁 의지도 싹틔울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역사는 시대에 따라 혼란과 안정을 반복하면서 인간 개개인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지배 계급의 독점적 지위를 세습하던 사회적 유동성 없는 폐쇄사회(閉鎖社會)로부터 피지배 계급의 항쟁을 통한 신분 상승을 획득하는 개방사회(開放社會)로 발전했다. 또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종교적 신앙심과 인간의 양심에 의한 사회규범으로 인간문화를 창조했다.

그러나 인간 수가 증가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국가 지배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법이 필요했다. 오늘날 대부분 국가는 나라마다 역사적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전제주의를 부정함으로써 설립한 근대 시민 국가의 정치 원리에서 "행정은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의거하여 행해야 한다"는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채택하고 있다. 이제는 누구에게나 선택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 속에서 지배층의 특권이나 자본가의 부의 한계도 법으로 제한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분출돼 공감하는 말이 '공정(公正)'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불공정함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따라서 우리는 불공정이 어디에 기원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우리 역사에 대한 총체적인 파악과 통찰을 해야 한다. 우리 역사에서 지난 1세기는 일제의 야만적 식민통치를 거쳐 미군정의 한반도 분할과 남한의 점령통치, 반민족·반민주세력들을 위한 독재정치가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우리 사회를 불공정의 늪으로 빠뜨렸다.

일제의 식민통치 시대에 나약한 지식인들은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일제를 찬양하면서 개인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해방 후에도 미군정과 독재권력에 기생하여 지배적 위치에서 우리 사회 전 분야를 비 정상적구조로 고착시켰다. 반면에 독립지사들은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나드는 삶을 견뎌야 했으며, 해방 후에도 미군정과 독재권력의 경계의 대상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과 가난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 결과 지금 우리 사회는 법과 원칙이 제대로 실현되는 사회정의를 바탕으로 하는 공공의 가치가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개인 이익이 우선하는 사회는 불법과 탈법이 만연돼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불공정한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금의 투기 열풍에 대한 사건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반적 관행으로 불법과 편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다.

지난해 12월 출간된 '공정하다는 착각'의 저자인 마이클 센델(Michael J.Sandel)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의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생동감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가 말하고 있는 핵심은 '현대 자유주의를 규정하는 능력주의 중심에 대한 재검토'다. 그동안 우리는 국가가 공정한 제도를 만들고 개인은 열심히 노력해 자부심을 갖고 그 대가를 향유하게 하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능력주의 중심 사회에 내재한 '모욕(Insult)의 감정'을 놓치고 있음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상승에만 집중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사회적 연대와 시민의식에 기여하지 못한다. 심지어 사회적 상승에 보다 성공한 나라라도 상승에 실패한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할 수 있도록, 그리고 스스로 공동체 구성원으로 여길 수 있도록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제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 막대한 부를 쌓거나 빛나는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도 고상하고 존엄한 삶을 살도록 할 수 있는 '조건의 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라고 말한다.

미국을 따라가고 있는 우리 사회도 수구 기득권 세력들이 주도한 능력주의 신화가 뿌리깊게 내려 국·영·수 중심의 성적기반 능력주의적 인식과 구조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교육 현실이다. 진정한 공정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난 시대의 굴절된 것들의 정리와 더불어 경직된 교육 현실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필수 과제이다.

법(法), '물은 흐르면서 제거한다'는 뜻이다. 물이 자정 작용으로 더러운 것을 없애고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공정사회 실현에 장애가 되는 것을 법으로 확실하게 청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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