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금강일보] 휴지통

- ? -

진실로 고독한 자는
놓친 것보다 버린 것이 많은 자다

오늘 내가 버린 꿈들은
내가 딛고 선 발자국의 깊이로 살아남고

매일같이 나와서
별을 보고 돌아가는 내 이마 위에
생년월일을 적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나를 빙자하여 행하여지는 너의 사랑은
나를 더없이 가난하게 하지만
나는 내 명대로 살겠다

우선 이 시와 관련해 먼저 몇 가지 말해둘 게 있다. 이 시의 저자를 물음표로 했는데, 실제로 나는 누가 이 시를 썼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적은 이 시의 원문이 바른지 어떤지 그조차도 알 수 없다. 나는 이 시를 읽은 게 아니라 들었는데 정영상 시인을 통해서였다. 정영상 시인은 술자리에서 술이 좀 취했다 하면 가곡 ‘망향’을 즐겨 불렀고, 또 이 시 ‘휴지통’을 낭송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몇 번 들은 이 시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혹시 이 시가 인터넷에 올라 있지 않을까 하여 찾아봤지만 없었다. 그런데 나 스스로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이, 술자리에서 몇 번 들은 이 시의 첫 구절, ‘진실로 고독한 자는 / 놓친 것보다 버린 것이 많은 자다’가 내 인생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의미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앞서 말했듯이 내가 이 시의 원문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진실로 고독한 자는 ‘버린 것’이 많은 자이며, 오늘 내가 버린 꿈은 내가 딛고 선 발자국(존재)의 깊이로 살아남고, 그리하여 내가 바라는 바의 소망(별) 앞에 내 존재의 근원(생년월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빙자한 너의 사랑이 나를 가난하게 하지만 나는 내 명대로 살겠다, 이런 정도의 의미다. 그런데 이 시에는 생의 비의(秘意)를 드러내 주는 번뜩이는 시구가 있다. 바로 1연의 1~2행 ‘진실로 고독한 자는 / 놓친 것보다 버린 것이 많은 자다’이다.

이 문장이 안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문장은 말 그대로 진실로 고독한 자는 놓친 것보다 버린 것이 많은 자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놓친 것’과 ‘버린 것’의 차이다. 진실로 고독한 자는 놓친 것이 아니라 버린 것이 더 많은 자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놓친 것은 무엇일까? 놓친 것은 자기가 갖고 싶음에도 자기의 힘이 미치지 못해 무엇인가를 놓친 것이다. 다시 말해 놓친 것에는 갖고 싶었지만(욕심이나 열망) 어떤 이유로 인해 그러지 못한 아쉬움, 안타까운 감정이 배어 있다.

그러나 버린 것은 그렇지 않다. 버린 것은 자기가 이미 갖고 있거나 가질 수 있는 것을 (의지에 따라) 버리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이라면 갖다 버리는 것이고, 정신적인 것이라면 내려놓는 것이다. 얻고자 하는 데 힘이 달려 그러지 못한 욕망이 놓친 것에 있다면, 버린 것에는 덜어내고자(가벼워지고자) 하는 주체의 의지가 들어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진실로 고독한 자는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놓친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를 자기 의지(결단)에 따라 버린 사람으로 단정한다. 더구나 첫 행 맨 앞에 ‘진실로’라는 부사를 놓음으로써 그 같은 단정을 옴쭉달싹 못하게 못 박아 버린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들은 어떤가? 우리는 언제 고독한가? 외로울 때? 많은 이들이 외로울 때 고독하다고 말하지만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외로움은 원하지 않는데도 혼자 있게 될 때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그에 비해 고독은 스스로 원해서 취하는 능동적인 선택의 결과다.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 고독한 가운데 자기 자신을 담금질할 필요가 있다. 외로움은 밖의 것을 구하지만 고독은 안의 것을 추구한다. 외로움은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고독은 스스로 혼자 되기를 결심한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시는 나의 인생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놓친 것보다 버린 것이 많은 사람으로 살자라는 삶의 자세를 이 시를 통해 갖게 됐으며, 지금까지 그렇게 살려고 하고 있다. 이렇듯 좋은 시 한 편에는 사람의 가치관 형성과 그것에 따라 살게 하는 힘이 있다. 무언가를 놓친 사람에게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지만, 무언가를 버린 사람은 고독하며, 그렇게 고독할 때 사람은 성장한다는 것을 위 시가 깨우쳐 줬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