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 잔디밭 건설용 테이프 도배
시민 “산책 왔는데 공사하는 줄…”
시설 관계자 “야간 음주·취식객
쓰레기 투기 막기 위한 고육책

지난 10일 찾은 대전 서구 둔산대공원 일대 잔디밭이 건설용 테이프로 막혀 있다. 이준섭 기자
지난 10일 찾은 대전 서구 둔산대공원 일대 잔디밭이 건설용 테이프로 막혀 있다. 이준섭 기자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코로나19에 문화예술시설이 밀집한 대전 서구 둔산대공원 일대가 몸살을 앓고 있다.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으로 인해 한때 산책과 쉼터로 이용돼 온 주변 잔디밭이 전면 폐쇄되면서다. 고육지책이긴 하나 건설용 테이프로 접근을 차단하면서 공사장을 방불케 한다는 시민들의 아우성이 빗발치는 까닭이다.

지난 10일 대전예술의전당, 대전시립미술관, 이응노미술관, 대전시립연정국악원을 비롯해 한밭수목원이 있는 둔산대공원은 가을 햇볕 내리쬐는 날씨와 달리 차갑고 딱딱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잔디가 있는 곳이면 어디랄 것도 없이 ‘안전제일’, ‘위험’ 등의 예사롭지 않은 문구가 적힌, 공사현장에서 볼법한 테이프로 도배된 광경이 연출된 탓이다. 그중에서도 잔디밭이 밀집된 시립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 주변은 테이프 천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늦더위를 식혀줄 분수가 시원하게 하늘로 솟아오르는 한켠에서 포착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휴일을 맞아 이곳을 찾은 시민들도 적잖이 당황하긴 마찬가지다. 연인과 함께 산책을 나온 김새롬(23·여) 씨는 “순간적으로 공사를 하는 줄 알았다”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시선에 거슬리기도 하고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둔산대공원 잔디밭이 달라진 모습이 된 데엔 나름의 사연이 있다. 거리두기 여파로 밤 10시면 모든 시설이 문을 닫지만 야외는 ‘예외’라는 빈틈이 있다. 이 일대는 주야를 불문하고 시민들이 다수 찾는 곳인데 특히 야간엔 음주는 물론 야식을 즐기곤 정작 뒤처리는 하지 않고 떠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원망섞인 귀띔이다.

시립미술관 관계자는 “그간 여러 차례 계도를 하고 안내를 해도 아침이면 잔디밭과 주변에 술병부터 시작해 온갖 쓰레기가 널리기 일쑤였다”며 “쉬다가는 건 괜찮은데 다 버리고 가니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통제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둔산대공원이 다시 본래의 공간으로 돌아가기까진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거리두기가 급격하게 변하지 않는 이상 부족한 시민의식의 결과인 잔디밭 폐쇄를 당장 풀기엔 어렵기 때문이다.

한밭수목원 관계자는 “단속하는 경찰이나 공무원들이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데 지나가면 술자리를 가지려고 하는 시민들이 많다”며 “아무래도 단계적 일상 회복이 본격화되거나 거리두기 단계가 풀려야 잔디밭도 원상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응노미술관 관계자도 “미관상 건설용 테이프 대신 따로 띠지를 제작해 교체할 계획”이라며 “당분간 현상 유지가 불가피하다”고 이해를 구했다.

글·사진=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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