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존치-이전 시민의견 수렴 마무리
시민 78% “보문산서 이전해야”
본래 위치 대전역 56% 압도적
許 시장도 공감...결단만 남아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속보>=대전시민들은 개발의 가치에 밀려 석연찮은 이유로 산으로 쫓겨난 문화유산인 을유해방기념비(乙酉解放記念碑)를 본래 자리로 돌려놓을 것을 명령했다. 을유해방기념비의 대전역 귀환이야말로 대전의 역사를 찾는 길이라는 확신에서다. <본보 9월 14일자 1면 등 보도>

잔혹한 식민 지배 설움을 끝내고 광복 1주년의 기쁨을 시민이 함께 나누고자 1946년 지역의 관문인 대전역에 세운 을유해방기념비는 그 자체로 국가의 쇠락과 중흥, 해방된 조국에서의 새로운 도시 생성과 발전을 염원하는 상징이었다. 어디까지나 1971년 대전역을 떠나 보문산으로 옮겨지기 전의 얘기다.

‘이전이냐, 존치냐’를 놓고 갑론을박만 이미 수 세월. 건립 75주년, 보문산 이전 50년을 맞아 시민들은 그 취지와 온전한 역사로의 계승을 위해 뭉치고 있다. 보문산에서 이전, 을유해방기념비의 제자리를 찾아주자는 대의(大義)에서다.

대전시가 지난달부터 이달 12일까지 온라인 정책제안 플랫폼 대전시소에서 실시해 온 을유해방기념비 이전에 관한 시민 의견 수렴 작업이 끝났다. 시에 따르면 이번 의견 수렴 과정에는 시민 1145명이 참여했다.

그 결과 과반이 넘는 56.42%(646명)가 원래 위치인 대전역 이전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현재 을유해방기념비가 서 있는 보문산 존치가 21.57%(247명), 중구 선화동 양지근린공원 이전이 18.95%(217명), 기타 3.06%(35명)로 집계됐다. 전체 78.43%(898명)가 사실상 현재의 보문산에서 이전해야 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보문산 이전 50년의 역사성도 중요하지만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옛 자취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지가 반영된 셈이다.

시는 시민 의견을 바탕으로 전문가 자문 과정을 거쳐 을유해방기념비의 종합관리 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내주 중 문화재위원회를 열고 문화재위원, 전문가들의 자문을 들을 계획”이라며 “여러 의견을 종합해서 을유해방기념비 종합관리계획을 세우고 시민이 체감할 수 있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시민사회에서는 을유해방기념비의 이전 당위성이 분명하게 증명된 만큼 시가 입장을 분명히 하고 구체화된 계획을 제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랜 세월 보문산에 머무는 동안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존재가 돼 버린 을유해방기념비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작업도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관내 고교생들과 을유해방기념비 이전을 위한 캠페인을 전개해 온 최장문 대전대신고 교사는 “시민들의 이전 의견이 압도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더 중요한 건 공청회 등을 통해 지역에서 을유해방기념비의 의미와 시민 인식을 높여주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안여종 ㈔대전문화유산 울림 대표는 “지금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장소에서 을유해방기념비를 마주하길 바라고, 옮겨진다면 원래 자리인 대전역으로 가야 된다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긴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허태정 시장이 시민 의견을 존중하는 결론을 내리고 대전역의 여건 등을 감안해 예산을 세워 적절한 시점에 옮기는 실천에 나서야 할 때”라고 짚었다.

한 문화계 인사도 “아무리 훌륭하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라 해도 시민 곁에서 멀리 있다면 소중함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며 “허 시장이 직접 을유해방기념비가 보문산 외곽에 있고 노출이 안 돼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임을 인정하기도 했고 시민들이 이전을 주문했으니 이제 그 외침에 시가 대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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