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구간(대청댐 물문화관~삼정동~이현동 두메마을)

삼정공원에 억새가 깃털을 휘날리고 있다.
삼정공원에 억새가 깃털을 휘날리고 있다.

가장 으뜸가는 처세술은 물의 모양을 본받는 것이라 했던가, 노자는 강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물처럼 돼야 한다고 했다. 봄과 여름이 지나고 우리의 마음을 간지럽히는 낭만의 계절 가을이 왔다. 마음의 모양이 어떻든간에 늘 든든하고 강직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청호, 오늘은 그 시작인 1구간의 모습을 담아본다. 

 

◆ 여행길의 메카, 대청댐물문화관과 로하스캠핑장 
11.5㎞의 길이를 자랑하는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의 들머리는 대청댐물문화관이다. 추운 날씨임에도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대청댐의 웅장함을 뒤로하고 물문화관 광장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는 무리가 바람을 가르고 달려나왔다. 본격적으로 추워지는 가을도 그들의 열정은 막을 수 없나보다. 하긴, 계절은 지날지 몰라도 대청호는 얼지 않는다. 늘 그 모습 그대로 곁에 있으니 대청호반을 바라보다보면 자연스레 내 어딘가에 숨어 있던 모험심과 강인함을 끌어냈을지도 모르겠다. 

 

물문화관을 한 바퀴 돌고 로하스캠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은 자전거 여행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지만 걸어서는 5~6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가을 날씨에는 조금 힘들 수 있지만 이날따라 어린 아이들의 달리는 모습이 많이 포착됐다. 학교에서 나왔는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무리 지어 종량제 봉투를 들고 호숫가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그늘진 산비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환경정화 활동을 펼치는 아이들을 보니 동심 깊숙이 가을볕이 번져오는 것만 같았다. 글램핑장에서 많은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저녁을 해먹다 보니 가족공원 초입부터는 여러 음식냄새가 난다. 그것도 누군가에겐 행복한 향기일 수 있겠으나 조금만 더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대청호와 숲길의 산뜻함이 나를 에워싼다. 하루의 짐이 모래알처럼 부서져 사라진다. 

 

삼정공원 억새들. 가을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삼정공원 억새들. 가을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 대전 구석구석 걸어보기 : 삼정동과 이현동 
해가 지기 전에 1구간의 명소를 다니려다 보니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 수 없었다. 다음 코스는 삼정마을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다른 곳보다 관광객이 적고 규모가 작아 한적하지만 억새와 갈대 군락이 우리를 반겨준다. 오솔길이 연상되는 고즈넉한 풍경을 따라 공원을 걷다보면 근접한 곳에 길 잃고 정박한 오리배가 보인다. 잔잔한 물결에서 조용한 사색을 즐기는 듯한 모습, 어쩌면 가을은 여름보다 그늘의 빛깔이 짙어져 마음이 공허할지도 모르지만 대청호 옆에서 걷는 사람의 온도는 항상 36.5도다. 대청호 따라 나부끼는 바람 덕에 '아, 내가 이렇게 따뜻했구나' 느낀다. 어쩌면 오리배도 그저 낯선 곳에다 잠시 짐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청호를 찾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말이다. 

 

삼정동 비점오염저감시설.
삼정동 비점오염저감시설.

 

다음 장소는 삼정동 비점오염 저감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비점오염 저감시설은 도시나 도로, 농지, 산지, 공사장과 같은 장소에서 불특정하게 비축되는 수질오염 물질들을 줄이는 시설로 대청공원과 마산동 쉼터 사이에 있다. 7월 한창 여름이 뜨거울 때 노란 금계국과 꽃창포가 우리를 반겨주지만 가을 앞에서 모습을 감춘 꽃들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새빨간 산수유 열매와 억새, 그 사이를 지나가는 손잡은 가족들의 모습이 풍경의 아름다움을 한층 격식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잠깐 쉬어가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이현동 생태습지 호박터널
이현동 생태습지 호박터널
이현동에 조성된 형형색색 호박조형물.
이현동에 조성된 형형색색 호박조형물.

 

마지막으로는 오색빛 호박마을이 있는 이현동 생태습지를 방문했다. 이현동 생태습지는 지난해 대전시가 지정한 아름다운 자연생태 7선에 들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조금 생소할지도 모르는 이현동은 계족산의 동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장동과 인접해 있다. 대덕구의 법정동이며 신탄진동을 행정동으로 두고 있는데 여기가 정말 대전이 맞는지, 대전 시민으로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르는 대전의 모습이 많구나, 싶었다. 
이현동생태습지는 대청호 수질을 관리하기 위해 지난 2013년 배오개천 하류 일원에 조성한 습지다. 습지에 사는 다양한 생물뿐만 아니라 가을과 함께 잘 여물어가는 벼 등도 볼 수 있다. 초행길에는 조금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대청호수를 타고 오다보면 오색빛 호박마을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그 방향으로 들어가 조그마한 터널을 지나게 되면 마을길이 나오는데 주차가 쉽지 않아 보이지만 그 길을 따라 800m 가량을 직진하면 공터가 있다. 그곳에 주차가 가능하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의 끝이자 2구간의 시작점인 이유도 있지만 9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비대면 축제인 '호박마을 힐링여행' 행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호박 품종을 전시한 호박터널, 다양한 모양의 호박으로 만든 색색의 호박 조형물과 포토존 등이 있어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다. 특히나 호박터널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여러가지 모양과 색을 가진 호박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꽤나 재미나다. 호박축제가 아니더라도 조그만 마을길을 거닐다 보면 밥 뜸드는 냄새, 여러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의 반기는 소리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귓가를 스치고,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들이 많다. 
날은 추워지고 있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가족이 생각나고, 가족같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대청호와 같이 우직하게 우리를 지켜주는 것들, 나를 자라게 하는 것들에 대한 회상과 사색이 가을을 맞은 대청호반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묘미가 아닐까.

김미진 기자 kmj0044@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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