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정치학 박사
연일 폭염이 거세다. 유별나게 올 여름은 불볕 더위에 나라 전체가 찜통이다. 그나마 밤잠을 설치면서도 런던에서 보내주는 승전보에 숨이 트인다. 8월 국회가 개점휴업 상태이지만 우리 정치권은 연일 숨이 거칠다. 정치권의 검은 돈, 이른바 ‘돈’ 덫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정치는 돈을 수반하는 행위다. 민주주의 역시 돈을 동반하면서 성장한다. 건실한 민주주의는 투명하고 합법적인 돈의 출처와 사용 경로가 전제되어야 한다. 돈을 매개로 행해지는 뒷거래와 불법적 행위는 민주주의를 좀 먹는 주범이다. 그래서 정치와 돈의 상관관계는 선진정치와 후진정치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새누리당의 공천헌금 의혹설이 한 여름밤의 미스터리로 등장했다. 대선 후보 경선 중에 벌어진 일이라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니다. 향후 의혹설의 진실 여부에 따라 경선의 성패여부가 결정되는 꼴이 되었다. 연일 공세에 나선 민주당도 공천헌금 사태로 휘청거린 게 엊그제다. 선진당 같은 작은 정당은 아예 존폐 기로에 들어서 있다. 여야가 서로 아웅다웅 펼치는 설전과 손가락질 하는 모습도 이젠 지겹다. 여야 모두가 돈 덫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새누리당을 뒤흔들고 있는 공천헌금의 진실여부를 떠나, 단순한 의혹으로만 치부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으례 그렇듯이 정치인들은 돈거래 의혹이 제기되면 무조건 부인한다. “한 푼도 받지 않았다, 기억이 안 난다” 또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등등. 그러다가 들통이 나면, 그 때서야 머리를 숙이고 “국민께 사과드립니다”로 막을 내린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선진국의 경우, 부정부패 연루자들은 명예를 중시하여 자살까지 한다. 우리의 경우, 명예보다도 돈과 권력에 대한 의지가 더 강한 것 같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선진통일당에서도 비례대표 3억 헌금설과 50억원 차용설 등 흉흉한 의혹이 난무하는 중이다. 이전의 자유선진당이 남긴 추악한 유산을 넘겨받은 선진통일당은 와해 직전으로 몰리고 있다. 세상사가 그렇듯 사필귀정이다. 부정한 행위는 언젠가는 밝혀지기 마련이고, 그 업보를 치러야 마땅하다.

꺼져가는 당의 동력을 살려내고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비상한 각오와 칼질을 해댔지만, 소리없이 펼쳐지는 뒷거래를 막아내긴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제도적으로 차단하려해도 권력을 향한 추악한 속성 탓에 근본적인 치유가 어렵다. 그렇다 해도 끊임없이 걸러내야 한다. 그래야 선진정치와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다.

하여튼 지금 때가 어느 때인 데 돈질을 해댈 수 있단 말인가. 주는 자도 받는 자도 간덩이가 부었다. 건네진 돈의 규모의 차이가 있겠지만, 차떼기 정당으로 오욕을 감수했던 한나라당의 악몽이 떠오른다. 새누리당이란 새 옷을 입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공천헌금설이 나온단 말인가. 이건 뼛속까지 파고든 고질병인 모양이다. 우리 정치권의 DNA가 바뀌어야 고쳐질 모양이다.

선비가 속물에 찌들면 명의도 못 고친다( 士俗不可醫), 소동파는 그렇게 읊었다. 현대판 소동파라면 “돈질하는 정치”는 화타 같은 명의도 못 고친다고 하겠다. 정신상태가 온전한 사람이 정치를 해도 못 믿을 판인 데, 비뚤어진 마인드와 행동에 젖은 사람은 정당 내부에서 가려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끊임없는 자정의 노력이 요구된다.

총선 공천 당시 비대위원장이었던 박근혜 후보로서는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지경일 것이다. 경선 후보들은 박 후보를 향한 공격의 호재로 적극 활용 중이다. 죽어가는 당을 두 번씩이나 살려냈지만, 이번 사태로 민심이 떠나가는 걸 감수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서둘러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어느 누구도 돈 덫에 걸려들면 살아남기 어렵다. 전직 대통령들의 말로가 그랬고, 작금에도 대통령의 형이든 국회의장이든 돈 덫에 걸려들면 온전한 자가 없다. 더위에 지치고 삶이 고달프지만 국민의 눈과 귀는 오늘도 런던으로 향하고 있다. 승패 여부를 떠나 당당하게 겨루는 그 자체가 아름답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언제쯤이면 우리 정치가 국민에게 감동을 줄 것인가. 한 여름 밤의 미스터리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