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덕원 세종경찰서 한솔파출소 경위 권덕원>

오늘은 무슨 신고가 들어올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야간근무를 시작했다. 오늘도 큰 사건 없이 무사히 넘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야간이나 주간이나 마찬가지다. 새벽 12시가 넘은 시간 파출소를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을 들며 도로 중앙선 위를 걸어오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 한분이 보였다.
“아저씨 늦은 시간에 어디가세요? 야간에 찻길 다니시면 위험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저씨는 타라 마라 할 시간도 없이 무턱대고 순찰차 뒷자리에 타는 것이다. 순간 술 냄새가 순찰차 안에 진동했다.

그때부터 순찰차는 졸지에 택시가 됐고 손님의 지시를 따라야했다. “처자식 보고 싶어 내가 오늘 한 잔 했수다. 일단 금강으로 가! 내 숙소가 거기야”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아니 이 아저씨가 혹시 가족이 그리워 술김에 다른 맘을 먹은 건 아닌가? 아무말없이 집에 모셔다 드려야겠다.’ 마음먹고 순찰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단 저 앞으로 쭉 가봐. 그렇지 다리 건너서! 아니 여기가 아닌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아까 그리로 가봐” 이렇게 한참을 돌고 돌아 온 곳은 처음 출발지였다. 도저히 답이 없었다.

“아저씨 혹시 전화기 없으세요?” 간신히 아저씨의 전화기를 건네받아 전화를 하자 “아! 그 사람 우리집에서 생활하며 건설현장 일하는 사람입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단숨에 달려가 내려드렸다.
새벽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한숨 돌리려는 찰나 112신고가 또 날아들었다.
이번에도 취객이었다. 신고자에 따르면 예전에 사귀던 사람인데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실에 앉아 있던 남자는 얼큰하게 취한 상대였다. 경찰이 들어서자 예상과 달리 남성은 순순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파트 밖으로 나갔다. 그때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태도가 돌변하기 시작했다. 욕설은 기본이고 나이까지 들먹이며 시비를 걸어온다.

“아저씨 이제 그만하시고 집에 돌아가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주민들이 잠을 자지 못 하잖아요” 정중히 권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참다못한 동료가 휴대폰을 꺼내들어 동영상 촬영을 시작한다. 그제서야 목소리를 낮춘 이 남성은 태도를 바꿔 집까지 태워달라며 다짜고짜 잠겨 있는 순찰차 문을 열려고 한다.
“아저씨 저희는 순찰 돌아야 하니까 그만 집에 가세요”
그러자 다시 욕설이 시작됐다.
“XX! 민중의 지팡이가 이래도 되는 거여? 다른 경찰들은 택시비까지 줘가며 집에 보내주는데 니들은 뭐냐?”
“야 일단 담배나 하나 피게 라이터 좀 내놔봐”
“라이터 없으니 이제 그만 하시고 집에 가세요.”

“라이터 없으면 편의점에서 사다가라도 줘야지? 너 이름 뭐야 민중의 지팡이가 이 따위로 해도 돼?”
모든 주민을 위해 순찰을 돌아야 할 시간에 취객 한사람으로 인해 시간을 낭비하고 갖은 욕설까지 들어야 하는 것이 치안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씁쓸한 모습이다.
물론 경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주민이 있다면 신속히 달려가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일을 당연하듯 요구하고 그것을 받아주지 않는다며 비난하는 것은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닐까?
선량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야 하는 순찰차가 어쩌다 주취자 수송차량으로 전락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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