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영화중에 패치 아담스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무료병원인 게준트하이트 병원을 설립한 헌터 도허티 아담스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영화화 한 것이다.

생의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신념을 실현해 낸 한 인간에 대한 스토리라는 부분에서는 여느 위인전기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환자를 단순히 질병을 치료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소중한 한 인격체로 보고, 그들이 겪고 있는 절망을 깊이 있게 통찰하여 몸의 질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치료하려는 패치의 고집스런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런 그의 신념을 실현시켜낸 곳이 바로 게준트하이트 병원이다. 게준트하이트 병원의 미션인 모든 치료요법은 다 환영한다, 모든 환자들을 친구로 대한다, 건강서비스는 무료이다, 건강관리 및 치료는 웃음요법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의사의 건강과 환자의 건강은 동등하게 취급된다, 개인의 건강은 가족, 공동체, 사회, 자연환경과 동일시된다는 선언에서 패치가 바라던 세상을 엿볼 수 있다.

대전에도 게준트하이트 병원만큼은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희망진료센타가 있고, 패치와 같은 의사들이 많이 있다. 10여년 넘게 희망진료센타에서 봉사하는 의사들은 진료소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단순히 몸의 질병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의 병까지 치료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그들은 영화 속의 패치처럼 희망진료센타를 찾아오는 환자들의 질병뿐만 아니라 질병에 걸릴 수 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까지 바꾸어 보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나는 늘 진료소를 통해 만나는 모든 의사들은 이 시대 패치와 같은 의사들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얼마 전 또 한 명의 패치와 같은 의사를 만나게 됐다. 바로 충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주기혁 선생님이다.

주선생님이 벧엘의집에 전화를 한 시간은 대전역 거리급식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자신은 충남대학교 응급실 의사인데 며칠 전 119구급차에 실려 온 환자가 퇴원을 해야 하는데 딱히 갈 곳이 없어 벧엘의집으로 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침 거리급식을 위해 대전역으로 가려고 하니 그분에게 대전역으로 가서 원목사를 찾으면 거처가 마련될 것이라고 이야기 해 줄 것을 부탁했다.

대전역으로 가다가 의사가 직접 응급실 퇴원환자의 거처를 걱정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어 내가 병원으로 갈 테니 그때까지만 환자를 퇴원시키지 말고 보호해 달라고 부탁했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응급실은 휴일이어서 그런지 환자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베드를 배정받지 못한 환자들은 의자에 앉아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바쁜 상황이면 치료할 것도 별로 없고, 보호자도 없이 행려환자로 실려 온 사람이라면 응급실 귀퉁이로 밀려나 퇴원하든지 말든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그는 그 이름 없는 환자의 퇴원을 걱정하여 손수 벧엘의집으로 전화를 한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 올 때는 며칠 동안 씻지 않았는지 악취가 나서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수 목욕을 시키고,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고는 그 옷은 직접 세탁을 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응급실에는 식사가 제공되지 않아 자신이 편의점에서 우유며, 빵이며 먹을 것을 사다 주었다는 것이다.

주선생은 그를 냄새가 나고 지저분하고 그저 술에 절어있는 행려환자로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소중한 한 인간으로 본 것이다. 몸의 질병보다 더 깊은 삶의 절망에서 오는 마음의 병을 보려고 했기에 의학적으로는 별로 치료할 것이 없었지만 그 환자의 마음을 정성스럽게 치료해 주려고 했던 것이다. “의사는 단순히 의술을 시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의사는 무엇보다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눈앞의 본질 보다는 보지 못하는 본질을 봐라”라고 한 패치의 말처럼 충남대학교병원 주기혁 선생님 그리고 10여년을 넘게 꾸준히 희망진료센타에서 봉사하는 많은 의사선생님들이야 말로 의술을 시행하는 의사를 넘어 인간의 본질을 보고 그들의 삶까지도 치료하려는 헌터 도허티 아담스와 같은 의사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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