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슥한 골목이나 밤길을 걸을때 자기 방어 위한 호신용구 소지하고
치한이 쫓아오는 기척 느껴질 땐 자주 뒤돌아보면 범의 억제에 효과
치안당국 특단·지속적 대책 절실

윤승원 논설위원
작가 계용묵(1904.9.8~1961.8.9)의 명 수필 ‘구두’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앞에서 걸어가던 이십 내외의 어떤 한 젊은 여자가 이 이상히 또그닥거리는 구두 소리에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으로, 슬쩍 고개를 돌려 또그닥소리의 주인공을 물색하고 나더니, 별안간 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는 걸 나는 그저 그러는가 보다 하고, 내가 걸어야 할 길만 그대로 걷고 있었더니, 얼마큼 가다가 이 여자는 또 뒤를 한번 힐끗 돌아다본다. 그리고 자기와 나와의 거리가 불과 지척 사이임을 알고는 빨라지는 걸음이 보통이 아니었다.”

밤길에 여자가 혼자 걸어가면서 뒤 따라오는 남자의 구두 발자국 소리에 공포감을 느끼는 장면이다. 공포감을 가지면서도 ‘힐끗 뒤돌아보는’ 작품 속의 여성은 ‘자기보호 본능’을 최대한 발휘한 것으로 본다.
내가 과거 충남경찰청 ‘경찰사(史)’편찬위원으로 일할 때, 도내에서 벌어졌던(1985~1997까지) 주요 형사사건 자료를 수집하면서 가장 소름 끼쳤던 살인사건은 ‘공주 마티고개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이었다.

주로 사찰 암자에 기도하러 가는 여성을 대상으로 강간하고 살해까지 한 범인은 ‘사팔눈’의 K 모(30) 씨였다. 그에게 강간당하고 목 졸려 살해된 여성이 무려 6명이었다.(범인은 훗날 사형이 집행됐다.)
자칫 모방범죄가 우려돼 당시 끔찍했던 살해 장면은 생생하게 묘사할 순 없지만, 경찰사(史)의 한 페이지에 세상을 경악케 했던 형사사건을 기록하면서 필자로서 적이 안타까웠던 사실은 낯선 남성이 여성의 뒤를 따라 올 때, ‘뒤를 자주 돌아다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었다.

사람이 으슥한 곳을 걷다가 공포감에 휩싸이면 더욱 총총걸음이 되고 만다. 그저 앞만 보고 걸음이 빨라지기 마련이다. 이 때 용기 내어 뒤를 자주 돌아다보면 뒤따라오는 치한이 본능적으로 멈칫하고 딴청을 부리거나 심리적으로 충동성 ‘범의(犯意)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원통하여 구천을 떠돌며 잠들지 못하는 고인의 영혼이 있다면 “당시는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오늘 날에도 세상은 여전히 성폭행 살해 등 극악범죄로 험악하다보니, 여성이 으슥한 길을 혼자 걸어갈 때는 자기방어 차원에서 호신용구(호루라기 등)를 소지품으로 가지고 다니고, 그런 것을 챙기기 쉽지 않다면, ‘뒤라도 자주 돌아다본다면’ 강자가 약자를 ‘순식간에 덮치는’ 것을 어느 정도 예방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근 제주 올레길 여성 탐방객 엽기적인 살인 사건발생 이후, 전국 곳곳의 산책길에 운동하러 나서는 여성들이 크게 불안해하고 있다. 관계 당국에서는 사건이 발생한 위험 지역에는 반드시 2인 이상 무리를 지어 탐방하도록 유도키로 했다.
또한 관광지 이면도로 등 범죄 취약지에 대한 순찰 활동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에서는 중·장기적으로 자치단체와 협조해 관광지 범죄발생 취약지역에 감시카메라, 가로등, 알림표지판 등을 설치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신고할 수 있는 비상벨도 갖추기로 했다.

이런 세밀한 사후 대책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이 조심하는 일이다. 으슥한 길을 혼자 걸어가는 여성은 방어용 ‘헛기침’도 자주 할 필요가 있고, 수필작품 ‘구두’에서처럼 ‘힐끗 힐끗 자주 뒤를 돌아다 봄’으로써 만에 하나 야기될지도 모르는 변태성 범인의 충동적 ‘범의(犯意)’를 조금이라도 미리 억제, 또는 사그라지게 하는 방법도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응책이 될 것이다.

여성의 옷차림도 중요하다. 여름철 맨살이 지나치게 노출되는 옷차림은 변태 성욕자의 시선을 잡아 당이기는 자석과 같은 작용을 한다. 자기보호를 위해서는 외출 시 지나치게 선정적인 옷차림도 피해야 한다. 험악하고 불안한 세상, 지척에서 뒤따라오는 두려운 남성의 발걸음을 ‘멈칫’하게 만들거나 ‘따돌리는’ 여성 특유의 기지(機智)와 다양한 범죄 대응방법이 개발되고 모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치안당국의 노력이다. ‘치안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한 개인의 ‘자구(自救)노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포와 불안감을 주는 치안사각 지대 해소를 위한 경찰의 지혜와 특단의 노력을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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