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14-15대 총장

[금강일보] 얼어붙어 있던 땅이 녹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식탁에 올라오는 식재료도 다양해진다. 쑥을 비롯해 달래, 두릅, 냉이, 미나리 등 향긋한 봄나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쑥은 쌉싸래한 향취가 진하고 미네랄이 풍부해 건강에도 좋다. 어려서부터 ‘麻中之蓬不扶自直’(삼밭에서 크는 쑥은 돌보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는 교훈적 속담을 외우며 컸고 시골에서 출산한 임산부는 쑥을 끓여 그 김을 쏘임으로써 출산 상처의 지혈제로 쓰는 것도 봤다. 우리나라에선 전남 여수 앞 거문도에서 나오는 쑥이 유명하다. 거문도 해풍 쑥은 보통 3월 첫째 주와 둘째 주 사이에 출하된다. 원래 정월대보름이 지나자마자 첫 쑥을 먹는 게 상식이다. 바닷바람을 충분히 맞고 자라 향이 진하고 질이 좋으며 각종 미네랄도 풍부하다.

쑥은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잘 자란다. 쑥은 자연에서 난 쑥을 뿌리째 뽑아 밭에 듬성듬성 심어 놓으면 저절로 잘 자란다. 쑥은 땅속 줄기를 옆으로 길게 뻗으며 자라고 줄기마다 새순이 돋기 때문에 금세 땅 전체를 덮는다. 쑥은 나는 자리에서 매년 다시 자라난다.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나서 가장 먼저 자란 것이 바로 쑥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생존력과 번성력이 뛰어나 머지않아 쑥대밭이 조성된다. 쑥은 부드럽고 향이 진해 본연의 맛을 살려서 먹는 게 좋다. 물론 가볍게 씻은 후 맑게 끓인 된장국에 그대로 넣어 주거나 멥쌀가루, 소금, 설탕 등과 버무려서 쪄내는 ‘쑥버무리’로 만들어 먹어도 된다.

봄철 ‘도다리 쑥국’도 쑥을 이용하는 대표적 요리다. 봄철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도다리를 큼직하게 토막 낸 뒤 무, 양파, 고추, 다시마 등과 함께 끓이면 된다. 이때에 생선 비린내를 잡아주고 쌉싸래한 향을 더해 줄 쑥을 함께 넣고 끓이면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이 된다. 4월 중순쯤 되면 무릎 아래까지 자라는 쑥을 수확할 수 있다. 한번 뜯어낸 자리에선 쑥이 더 빨리 자라난다.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금방 자라서 길이가 쑥쑥 늘어난다. 이렇게 웃자란 쑥은 식감이 거칠고 향이 덜해서 직접 먹기보다 다양한 요리에 넣어 먹는 게 좋다. 농가에서는 직접 쪄서 말린 후 떡집으로 보내기도 한다. 떡집에선 향긋한 쑥에 참기름을 더해 보기엔 투박하지만 간식거리로 애용되는 ‘쑥개떡’을 만들어 먹는다. 부드러운 콩고물을 덧입혀 먹는 ‘쑥 인절미’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요즘에는 영농기술이 발달되어 쑥 아이스크림, 쑥 양갱, 쑥 라떼 등 쑥을 이용한 다양한 디저트들도 SNS에 소개되고 있다.

그 외 웃자란 쑥들은 채취한 후 화장품 제조 등 가공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쑥의 수확은 농기계나 어려운 기술 없이도 작은 칼로 베어내어 수확하니까 편리하다. 쑥 이외에도 봄철의 입맛 돋우는 제철 음식으로는 냉이 된장국, 두릅 튀김, 달래 파스타 봄동전 세발나물 비빔밥 등이 있다. 옛날 어른들은 설날을 지난 후 정월대보름 전에 새싹(주로 냉이) 음식을 3번 이상 먹어야 좋다고 말했다. 겨울 음식에서 부족해진 비타민이나 유기물질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한 배려였던 것 같다. 특히 두릅나무 새순은 향기도 독특하고 식감도 좋아 3-4월 음식으로는 특별식이다. 두릅은 단백질도 많이 들어있고, 사포닌도 들어있어 당뇨병과 신장병에도 좋은 약용 식품이다. 살짝 데쳐 먹거나 김치, 샐러드식 재료로도 좋다. 톡 쏘는 매운맛의 달래는 원기 회복에 딱 좋다. 특히 식욕부진과 춘곤증에 약용식품이기도 하다. 설령 독초라 해도 신춘의 최초 어린싹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요즘 어린이들은 제철 음식보다 공산품으로 나오는 패스트푸드에 길들여 있다. 그러나 생후 6세까지 먹어본 음식이 평생 거의 기본 입맛을 이룬다고 하니 우리나라 고유 음식을 먹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유학 시절에 간단한 몸살은 김치와 고추장만 먹어도 나았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