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 문지초 교사

날이 많이 무더워진 요즘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운전할 때에도 에어컨을 켠다. 이 신통한 발명품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묻는다. “선생님, 옛날 사람들은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살았어요?” 이러한 질문에 몇몇 아이들은 자신만의 답을 재잘거리기 바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언제부터 에어컨이 우리 생활의 필수품이 됐는지 궁금해진다. 이러한 생각은 에어컨이 없어서 너무나 더웠던 나의 스무 살 자취방의 기억을 소환해 낸다.

나의 스무 살은 서울에서의 대학생활로 시작됐다. 당시 내가 입학한 대학교의 기숙사 수용률은 매우 낮았기에 대부분의 학생이 자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학교 주변의 좋은 자취방을 얻는 것은 그 대학에 입학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입학 전에 미리 상경해 학교 주변을 몇 번이고 찾아봤지만 내 마음에 드는 자취방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나의 차선책은 바로 옥탑방이었다.

지어진 지 오래되었고 에어컨이나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도 하나 구비되지 않은 방이었지만 나는 그 옥탑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주택이 빼곡하게 들어선 복잡한 동네에서 나의 옥탑방은 문만 열면 시야가 탁 트이는 가장 좋은 전망을 갖고 있었다. 전망뿐만 아니라 채광, 통풍에 있어서도 최고였다. 세탁기 없이 살았기에 나는 모든 옷을 손으로 직접 빨아서 입었는데 빨랫감이 밀리면 주말에 몰아서 대량의 빨래를 해야만 했다. 옥탑 마당에서 넓은 고무 대야에 빨래를 넣고 발로 밟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너무나 즐겁게 빨래를 했다. 깨끗해진 옷들을 마당 줄에 널고서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는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쾌했다.

이렇게 낭만이 가득한 삶에도 어려움은 있었으니 바로 더위였다. 여름으로 들어서며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데, 나의 자취방은 말 그대로 ‘찜통’이었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여름방학에도 대전 집에 내려오지 못했기에 나는 옥탑방에서 더위와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낮에는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주변 카페 등에서 시간을 보냈다. 전화위복이 이런 것인지 그때가 아마 지금까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많은 책을 읽은 시기였을 것이다. 밤이 돼도 온종일 데워진 집은 여전히 더웠기에 잠이 들기까지는 서너 번의 냉수 샤워를 해야만 했었다.

일이 있어서 서울에 갔다가 아주 오랜만에 그 동네를 지나게 됐다. 잠시 차를 멈추고 동네를 둘러봤지만 나의 옥탑 자취방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한 번쯤은 다시 꼭 와보고 싶었는데…”

나를 잠 못 이루게 했던 뜨거운 여름의 더위만큼이나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했던 내 찬란한 스무 살의 날들이 너무나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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