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국진 전 대전교육과학연구원장

 내가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했던 학교는 바닷가 작은 마을에 있었다. 이 학교 울타리 옆으로 비포장 신작로가 있었는데, 하루에 네 번 버스가 다녔다.

아침 아홉 시 경에 첫차가 들어왔고, 오후 다섯 시 무렵이면 막차가 나갔다. 그 마을에서 읍내까지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가야 했는데, 읍내에서 출퇴근하는 선생님들은 출근 시간을 버스로 맞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벽 버스로 면소재지까지 와서 거기서 자전거로 30분을 타고 학교로 출근했다. 퇴근도 그랬다. 퇴근 시간이 되면 막차가 끊어졌으니, 다시 자전거를 타고 면사무소 앞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읍내로 퇴근을 했다.

이 불편이 해소된 것이 1982년이었다. 당시 이규호 문교부 장관은 벽지 학교에 근무하는 교원들의 출퇴근 불편과 여교원이 범죄에 노출되는 위험을 해소하기 위한다는 취지로 도서, 벽지, 읍 이하 지역 학교의 교원 퇴근 시간을 6시에서 5시로 조정하였다. 11월부터 2월까지 동절기에 한해서 허용한다는 단서도 있었다.

그 지침이 3년 후 모든 교원에게 일반화되었다. 당시 문교부 권이혁 장관이 충남지역을 방문하던 중, 교원 퇴근 시간을 5시로 조정해달라는 건의를 받았고, 다시 총무처와 협의하여 고등학교 이하 모든 교원의 퇴근 시간을 5시로 조정했던 것이다.

그 무렵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에 출근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어서 대개 8시 이전에 출근한다는 현실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이 규정은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 4시 반 퇴근으로 정착되었고, 그 대상도 학교에 근무하는 일반 근로자 모두에게 확대되었다. 세상의 직장인들이 부러워하는 학교의 퇴근 시간 조정 배경이다.

퇴근 시간과 함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교원 우대규정이 있다. 교육공무원법 41조이다. 이 법 조항도 이규호 장관 시절이던 1982년에 신설되었다. 1950년대 초반 제정되었던 교육공무원법은 이 해 대폭 개정했다.

개정의 초점은 교원을 사회적으로 우대한다는 방향에 맞추었다. 교원의 특별연수 규정, 초중고등학교장의 임명권자를 대통령으로 상향 변경한 규정, 정년퇴임의 시기를 학기말로 한 규정, 교직 수당 지급 규정 등 교원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교권 존중 조항들이 대거 신설되었다.

이 법 41조. ‘근무지외 연수’ 규정도 이때 신설했다. 방학 기간에 교원은 학교 이외의 장소에서 자율적으로 연수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규정이었다. 이후 교사들은 합리적이고 자율적으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연수를 받아왔다.

교육과정연수, 독서연수, 실기연수, 체험연수, 수업자료 제작 등 교사들에게 있어서 방학은, 학생을 교육하는데 필요한 지식‧기술‧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교원의 전문성 존중이라는 숭고한 뜻으로 제정되었고, 뜻에 따라 요긴하게 활용되었던 교육공무원법 41조가 최근 사회적으로 차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이 조항을 삭제해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했었다. 이때 청원 내용에는 도서관에 간다고 하고 미용실에 가는 비용에 세금이 쓰이는 것이 아깝고 억울하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런 의견에 적지 않은 국민들이 동의를 했다.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교원들의 근무지 외 연수가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근무지 외 연수가 방만하게 운영되게 된 것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행정이 원인의 한 축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조항에 대한 운영 방침과 정책에 대해서 법의 제정 취지를 외면하고, 무원칙하고, 애매한 태도를 견지해 온 것이다.

심지어 근무지 외 연수 결과를 제출하지 않게 하라거나, 방학 중에는 가급적 교원의 출근을 최소화하라는 안내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게 사실이라면 제정신을 가진 행정이 아니다.

근무지 외 연수가 아무리 자율적으로 시행되는 연수라고 하더라도, 공적 행위임이 분명하다. 재작년 서울행정법원에서는 이 연수 중 사망한 교원에게 순직유족급여부지급결정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했다.

쉽게 말하면 순직을 인정하고 유족 급여를 지급하라는 것으로, 41조 연수가 공적 행위였음을 인정한 판결이다.

근무지 외 연수는 자율적으로 시행하되, 어디까지나 교육공무원으로서의 규율과 감독의 범위 안에서 시행되어야 마땅하다. 무턱대고 학교에 나오는 날을 최소화하는 방편으로 쓰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법을 만들고 운영해왔던 선배 교육자들의 자부심과 의지를 생각해봐도 그렇고, 국민의 세금을 쓰는 교육자의 입장으로 생각해봐도 지금 근무지 외 연수는 훨씬 더 떳떳하고 내실 있게 운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규율과 질서는 반드시 안에서 스스로 세우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 수많은 역사에 나타난 지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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