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흘 전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숨진 배승아(9) 양의 가족들이 11일 오후 대전 추모공원에서 배양의 유골함을 봉안당에 봉안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른 편의 위해 스쿨존 과속방지턱 사라지고
“주차 자리 없다”며 스쿨존 해제 민원 폭탄
음주사고 일으킨 가해자 징역 4년 이내 선고
여전히 음주에 관대한 문화 저변 깔린 영향
결국 하늘의 별이 된 승아는 우리 모두 책임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란 말이 무색하게 스쿨존에서 배승아(9) 양이 참사당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배 양은 하늘의 별이 됐고 피의자가 붙잡혔지만 안타까운 사건이 이렇게 묻히면 안 된다. 아이의 안전보단 어른의 편의를 우선시하고 음주에 관대해 형벌이 낮은 우리 사회를 바꿔야 할 숙제가 놓였다. 배 양의 사고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이젠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관련기사 2·4면

지난 2020년 7월. 어른의 불편이 교통안전의 가치를 눌러버린 일이 대전 서구에서 발생했다. 스쿨존 확대에 따라 서구 문정로네거리에서 크로바네거리까지 설치됐던 5개의 과속방지턱이 일주일 만에 철거되면서다. 과속방지턱은 개정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명 민식이법 시행과 맞물려 자치단체가 보행자, 특히 어린이·노약자 등 안전취약계층과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건데 불편 민원에 설치 1주일 만에 철거됐다. 과속방지턱 설치에 투입된 예산 약 1000만 원이 1주일 만에 허공으로 날아갔다. 당시 과속방지턱이 설치된 구간은 배 양이 사고를 당한 문정초가 인접한 곳이다. 구는 과속방지턱 설치를 통해 ‘안전속도 5030 정책’을 뒷받침하고 스쿨존을 정비하는 동시에 어린이와 운전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렸다. 그러나 이내 민원이 쏟아졌다. 운전자가 문정로네거리에서 조금 과속을 하면 크로바네거리는 물론 갤러리아 타임월드가 위치한 은하수네거리까지 한 번에 통과할 수 있었지만 과속방지턱으로 인해 불가능해져서다. 당시 담당 부서에 접수된 민원은 고작 1주일새 무려 100건. 결국 구는 백기를 들고 과속방지턱을 다시 철거했다.

어린이의 안전이 ‘불편함’에 무릎을 꿇은 일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민식이법 시행에 따라 스쿨존 내 주·정차가 전면 금지되자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이 주차난을 겪는다는 불만으로다. 지난해 4월 대전의 다세대·다가구주택이 밀집한 주거지역 내 한 이면도로에 스쿨존임을 알리는 ‘어린이보호구역’페인트 표시가 사라졌다. 해당 지역은 어린이집이 위치해 스쿨존으로 지정된 곳이었는데 다세대·다가구주택도 함께 위치해 가뜩이나 심한 주차난이 더욱 심화된다는 민원이 빗발쳤다. 민원 해결을 위해 해당 자치구는 스쿨존 해제를 추진했다. 이처럼 민원으로 해제되거나 축소된 스쿨존은 대전에서만 약 30곳으로 알려졌다.

민원인에게만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음주에 관대한 우리사회 역시 큰 문제다. 여전히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란 그릇된 인식이 저변에 깔렸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 같은 인식을 타파하기 위해 음주운전자를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개정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윤창호법이 마련됐지만 대법원은 재범 기간을 설정하지 않아 위법으로 보고 있어 적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 음주운전으로 상해를 입힐 경우 기본 징역으로 1년 6개월에서 4년이 권고되는 실정이다. 실제 이번 참사가 벌어지기 약 열흘 전 지난해 대구 달서구에서 음주운전 중 보행로로 돌진해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는데 법원은 가해자에게 재범임에도 징역 3년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한계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최근 전체회의에서 음주운전·음주측정거부·무면허운전에 대한 양형 기준을 최대 징역 5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마저 적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배 양의 유족처럼 가족을 잃은 슬픔을 평생 지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다. 결국 민식이법과 윤창호법의 강화와 더불어 술에 관대한 우리를 돌아보고 안일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는 의결로 귀결된다. 못다 핀 승아란 꽃을 짓밟은 건 우리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최병호 한국교통안전공단 박사는 “음주운전은 재범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만큼 강력한 대처가 필요하다. 여기에 우리 사회는 소주 한 잔을 안일하게 바라본다.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