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식이법 시행 3년 지났지만… 사고 반복
안전 펜스도 없는 반쪽짜리 보호구역
‘윤창호법’상 무기징역 가능하지만 현실은 5년 ↓

▲ 김건희 여사가 지난 14일 대전 서구 둔산동 어린이보호구역 음주운전 교통사고 현장을 찾아 만취운전자 차량에 치여 숨진 고(故) 배승아 양을 추모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학교와 학원가가 밀집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처럼 사고 위험을 낮추기 위한 정책이 계속 시행 중이지만 좀처럼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대낮 길 한복판에서 인도로 돌진한 차량이 어린이를 들이받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면서다. 사고 장소는 스쿨존이었고 사고를 낸 차량의 운전자는 음주 상태였다. 지난 몇 년간 정부는 이른바 ‘윤창호법’과 ‘민식이법’ 등을 시행, 스쿨존 내 사고 및 음주운전 근절을 외쳐왔지만 허술한 스쿨존은 음주차량 등에 여전히 무방비로 노출됐다.▶관련기사 4면

◆2020년 민식이법 시행

스쿨존의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한 건 지난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9년 9월 충남 아산 온양중학교 앞 스쿨존 내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교 2학년 김민식 군이 달리던 차량에 치여 숨진 것이다. 인근에 초등학교가 있어 2018년 해당 구간이 스쿨존으로 지정됐지만 아이의 죽음은 막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스쿨존 내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의무화, 스쿨존 내 안전운전 의무 부주의로 사망이나 상해사고를 일으킨 가해자 가중처벌 등 2건의 내용이 담긴 ‘민식이법’이 발의, 2020년 3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김민식 군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이름을 딴 법으로 스쿨존 내 사고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정부는 민식이법과 맞물려 2022년까지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를 제로화할 것을 약속하면서다. 그러나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민식이법이 나온 이후에도 사고는 끊이질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2의 민식이’ 매해 수십 명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병욱 국회의원(포항 남구·울릉군)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2021년 시·도별 스쿨존 내 초등학생 교통사고 현황에 따르면 대전에선 2019년 16건, 2020년 17건, 2021년 19건 등 모두 63건이다. 세종은 2019년 3건, 2021년 4건 등 모두 7건으로 집계됐다. 충남은 2019년 12건, 2020년 17건, 2021년 13건 등 모두 49건, 충북은 2019년 18건, 2021년 9건 등이 발생했다. 충남에서 56건의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대전 서구의 한 스쿨존에서는 만취차량이 스쿨존 한복판으로 돌진해 배승아(9) 양이 7시간의 고통스러운 사투 끝에 목숨을 잃었다. 특히나 사고는 밝은 대낮 길 한복판에서 벌어져 인근 학교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큰 불안감을 형성하게 했다.

최혜연 문정초등학교학부모위원장은 “사고로 충격을 받았을 아이를 위해 위캔센터와 연계해 학생심리치료, 집단상담교육을 지원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 정말 답답한 건 가해 차량 운전자가 전직 공무원 출신이라는 점과 차량이 역주행해 사고를 낸 점이다. 차가 급작스럽게 인도로 돌진해 사고가 날 것을 누가 예측이나 하겠냐”라고 답답해 했다. 이어 “어처구니없게도 사고가 난 날이 여유롭게 걸어다닐 수 있는 주말 대낮이었다. 사고 이후 자녀들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안전한 거냐고 묻는다. 어른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조심해야 할 부분을 확인하는 게 정말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변화 없는 스쿨존

어린이에게 튼튼한 울타리가 돼야 할 스쿨존에 음주 차량이 파고든 이유는 민식이법 시행 이후에도 변하지 않은 환경이다. 실제 배 양이 참사당한 곳은 스쿨존임에도 불구하고 중앙분리대와 안전 펜스 등이 전혀 설치되지 않은 곳이다. 이 때문에 사고를 키웠다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현행법상 차량 진입을 억제하는 말뚝인 ‘볼라드’와 안전 펜스 등은 임의 시설에 해당돼 의무 설치 대상물에 해당하지 않아 안전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구간도 적잖은 상황이다.

최 위원장은 “요즘은 스쿨존이 아닌 곳에도 안전 펜스가 설치돼 있다. 특히 사고가 난 구간은 스쿨존을 벗어나는 곳으로 30㎞ 주행이 끝나면 차량이 속도를 내는 구간이다. 안전에 대한 안일함을 보여준 것 같다”라고 답답해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자치단체와 경찰은 대전 관내 스쿨존 전수조사에 돌입했고 안전시설을 설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사후약방문식 대안이라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결국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관련 작업이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이병훈 국회의원(광주 동구·남구을)이 지난 14일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면서다. 개정안에 따르면 차량 결함이나 음주운전, 조작 실수 등으로 차량이 인도로 돌진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스쿨존에 한해서라도 안전 펜스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골자다.

이 의원은 “운전자를 엄중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 펜스 등의 설치를 의무화해 어린이는 물론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음주운전 처벌 강화 대두

배 양의 사고를 계기로 스쿨존 안전강화는 물론 음주운전 처벌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01년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낸 가해자를 대상으로 최고 30년까지 유기징역을 내릴 수 있는 법을 마련했다. 이후 바뀐 법에 따라 20년을 넘기는 높은 형량이 선고되고 있다. 강력한 처벌이 가능해지자 일본에선 음주운전 사망사고가 급격하게 줄었다. 국내에서도 일본처럼 음주운전 처벌을 강력하게 내릴 수 있는 법인 이른바 ‘윤창호법’이 있지만 아직까지 강력한 처벌이 내려진 사례는 없다. 2020년 햄버거 가게 앞에서 6세 아이를 숨지게 한 음주운전 가해자에게는 징역 8년이, 지난해 인천 중구 을왕리에서 배달 일을 하던 가장을 숨지게 한 사건 역시 징역 5년이 고작이었다. 아직도 소주 한 잔을 안일하게 보는 경향이 없지 않은 탓이다.

최병호 한국교통안전공단 박사는 “외국의 경우 음주운전을 하면 면허가 취소된 운전자에게 면허 재발급을 해줄 때 의료·치료적 관점으로 접근한다. 이후 시동잠금장치를 장착하는 조건으로 면허를 재발급한다. 또 음주운전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문화가 정착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소주 한 잔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상당히 위험한 것이다. 강력한 처벌과 함께 치료도 병행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