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 16일이면 대전 동구 인동에선 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가 거행된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그때의 민초처럼 결연하게 독립을 외치는 함성에선 정신 계승과 함께 대전 첫 만세운동의 자긍심이 배어난다. 벌써 20년 넘게 융숭히 이어온 행사가 일자 변경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은 그래서 꽤 민망한 일이다. 관습과 전통을 저버리기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사실에 근거한 사료를 외면하면서까지 고수하기엔 이치에 맞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발단은 인동만세운동 거사 일자가 지금껏 알고 있던 3월 16일이 아닌 3월 27일임을 뒷받침하는 고증된 사료가 속속 제시된 데서 비롯됐다. 반면 3월 16일을 정설로 알게 했던 문서, 대전시사(史)의 내용이 사료를 근거로 작성되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지고 이를 주장했던 연구자도 논문을 통해 근거 미약이라며 오류를 바로잡으면서 인동만세운동 재현행사의 뿌리를 흔들었다. 잘못 채워진 단추를 다시 맞추는 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광복회 관계자는 “국가보훈처 자료와 만세운동 관련 재판기록 등을 종합해 볼 때 인동만세운동이 발생한 것은 3월 27일이다. 역사적 진실을 바로잡고 재현행사도 진실의 토대 위에서 새롭게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최 측인 동구가 이 같은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3월 27일 개최로 가닥을 잡았으나 4년 만에 재개한 올 재현행사는 예년처럼 3월 16일에 가졌다. 주민 반발이 컸다.

주민들이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기록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의심 어린 가변성과 대전 첫 만세운동 발상지라는 자긍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굳건히 자리 잡은 지역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읽힌다.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역사적 사실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고민이다. 또 어떤 사료가 나올지 몰라도 현재로선 역사는 ‘그날’을 3월 27일로 가리키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지난 2019년 장장 2만 7729건의 정보를 추출해 2619건의 사건정보로 정리한 3·1운동 데이터베이스는 인동장터 만세운동 발생일을 3월 27일로 기록했다. 이를 근거로 이미 대전시의 각종 자료는 인동만세운동 발생일을 3월 27일로 소개하고 있으니 정작 동구만 3월 16일에 서 있는 셈이다.

구는 시에 정확한 입장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 결과에 따르겠다고 했다. 답은 정해져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주민 의견이 관건이라고 하겠다. 정체성과 관련돼서 예민한 사안일 줄은 알지만 날짜가 바뀐다고 해도 재현행사를 통해 만세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주민들의 갸륵한 성심은 손상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날짜가 아닌 정신에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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