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다. 어린이날에 치여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되바라진 세태 속에서도 기념일이 주는 중량감만큼은 변함없다. 평소 데면데면하고 쌀쌀맞게 굴던 자식들도 이날 하루는 부모가 내준 품의 온기를 더듬으며 숙연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봐야 평균 잡아 카네이션 곁들여 요량껏 용돈이나 선물 건네는 게 전부겠지만 부모 시점에선 보람찬 훈장일 터다. 혹여 드릴 게 없어도 풀 죽지 말자. 내리사랑은 작은 몸짓에서 감동하는 법이다. 

5월 가정의 달이 곤혹스럽다고들 말한다. 애면글면해도 나아지지 않는 주머니 사정이 감당하기엔 기념일이 많아서다. 남들만은 못해도 기본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선 어버이날이 좀 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 그 대상이 철부지 아이들인 것과 낳고 길러준 것도 모자라 평생 자식 걱정인 부모인 것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식에겐 쉬운 사랑한다는 말이 부모에겐 왜 그리 어려운지 모를 일이다. 

어버이 은혜에 감사를 표해야 하는데 마땅히 내어 드릴 것 없는 자식들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날이라고 탄식한다. 콕 짚어 취준생이 그렇단다. 어디 그들 뿐일까만 머리 여물고도 취업하지 못해 부모 신세 지는 미안한 심경을 이해할만하다. 죄인처럼 굴 것 없다. 어버이날은 내년에도 있고 후년에도 온다. 훗날을 기약한다고 서운해할 부모는 없으니 취업 준비에 정진하는 게 효도다. 

사회생활을 하는 청년들의 애환도 들린다. 남들과 비교해 이것밖에 드릴 게 없는 처지가 부끄럽다는 것이다. 불경기는 나만 겪는 게 아니요, 나만 유리 지갑인 것도 아니다. 자식 된 도리를 물질의 크기로 잰다면 사회는 불효자 천지다. 허락된 여건에서 정성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부모의 은혜를 헤아리고 조금이나마 갚겠다는 자세가 효의 근본 아니겠는가. 아무리 각박해져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자식들이 있는 한 세상 살만하다. 

부모에게 진 빚은 절대 갚을 수 없다고 한다. 내리사랑은 인류를 넘어 만물의 본능이다. 빚을 갚기는커녕 망각의 늪에 빠져 부지불식간 가슴에 못질하는 게 예사다. 부모님 살아생전 보리밥 한 그릇이 돌아가신 연후에 상다리 부러지는 제상보다 낫다고 후회막급한 불효자들이 그리 일러도 따르지 못하는 이름이 자식, 우리의 자화상이다. 인륜은 그렇게 나이테를 둘러왔다. 

늘 나보다 자식이 먼저인 게 부모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맹목적이고 위대하다. 삼백예순다섯 날을 한결같이 섬길 수 없기에 단 하루만이라도 진심을 전하라고 어버이날이 있는 줄 안다. 치사랑의 여운은 짙고 향기는 오래간다. 돈이 들어가거나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겸연쩍어하지 말고 표현해보자. “부모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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