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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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랬다. 존경과 사랑의 크기가 견고하고 함축적으로 담긴, 그러나 지금은 박물관 족자로나 걸려 있을법한 사라진 유물이 스승의날을 즈음해 멍울진 비감을 토하고 있다. 존경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권한마저 예사로 짓밟히는 교단이 곪고 있어서다. 회의감은 의욕을 갉아먹어 백년대계를 슬게 할 수 있다. 국가가 교권 침해에 준엄하게 맞설 때도 됐다.

교원단체들이 스승의날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한마디로 잿빛이다. 과연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총이 10일 발표한 ‘2022년 교권 보호 및 교직 상담 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상담·처리 건수는 520건이다. 대면 수업 확대 여파로 전년 437건 대비 83건 증가했다. 학부모에 의한 침해가 241건으로 단연 1위를 차지하며 코로나 전 시대로 회귀했다는 발신에서 절망이 배어난다.

질도 안 좋다. 학생 지도로 분류된 125건 중 최소 절반 이상이 아동학대 신고 협박 또는 소송을 당한 내용이라는 게 교총의 설명이다.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 넷 중 하나는 교사들을 아동학대로 지목한 꼴이다. 학생이 아프다고 해서 양호실에 보낸 교사가, 문제 행동을 자제시키기 위해 손목을 잡은 교사가 아동학대로 몰리는 식이라는데 대부분은 무혐의로 종결됐다고 하니 아니면 말고 식의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가 횡행한다고 할만하다.

제 자식 귀한 줄만 알고 무시로 던진 돌에 교사들의 정신 건강은 피폐해지고 있다. 교사노조연맹이 최근 5년간 교권 침해 상황을 묻자 정신과 치료 또는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는 교사가 26.6%에 달했다. 잘 가르치려는 선의가 왜곡되고 따라서 교사로서 지극히 평범한 교육활동조차 위축되는 악순환이 병폐로 굳어지게 생겼다.

정신적 압박감은 사명감을 짓누르며 교단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교사의 87%가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는 교사노조연맹의 설문조사는 다소 충격적이다. 최근 1년간 이직 또는 사직에 대해 고민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33.6%는 ‘종종’, 27.6%는 ‘가끔’, 25.9%는 ‘거의 매일’이라고 답했다. 현재의 교직 생활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도 매우 불만족 39.7%, 조금 불만족 38.7%로 부정적인 의견이 68.4%를 나타냈다. 직장인들의 애환이라고 싸잡기에는 소임의 결이 다르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과 생활지도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교육계의 요구는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상식적인 몸부림이다. 교권이 바로 설 때 아이들의 인권과 학습권이 보장되고 공교육이 기를 펼 수 있다. 교육의 축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정부와 국회가 모를 리 없다. 아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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