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공약 후 대립 격화
경영계, “이제는 시행 때가 됐다”
노동계, “빈곤만 더 악화시킬 뿐”

▲ 지난 1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5차 전원회의가 잠시 이어진 휴정을 마치자 근로자위원들이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도 소리 없는 ‘최저임금’ 전쟁이 한창이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근로자 한 사람이 최저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임금의 최저 수준을 의미하는데 이 최저임금이 임금 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니 임금을 주는 경영계와 근로를 제공하는 노동계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치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아르바이트의 경우 최저임금이 곧 그해 임금으로 굳어지는 경우가 많아 최저임금위원회 논의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위 논의에선 다음해 최저임금을 정하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중요한 이슈 하나가 있다. 바로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는 문제다. 경영계가 매년 이 의제를 제시하는데 노동계의 반론이 만만찮다. 특히 이 의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해 지난해부터 노사 간 대립이 더욱 첨예하다.

◆업종별 차등 적용

최저임금을 업종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하자는 주장은 최저임금도 못 줄 정도로 경영이 어려운 소상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높은 최저임금 때문에 근로자보다 못한 소득을 올리는 업종·업주들이 있는 만큼 이들에게 현재의 최저임금 수준은 수용성이 낮으니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해보자는 거다.

우리나라에선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첫해인 1988년 음료·가구·인쇄출판 등 16개 고임금 업종(시급 487.5원)과 식료품·섬유의복·전자기기 등 12개 저임금 업종(시급 462.5원)을 구분해 최저임금이 적용됐는데 이듬해부턴 일률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해묵은 논쟁의 연속선상에서 최저임금위는 2017년 최저임금 관련 제도개선TF를 구성, 이 의제도 다뤘는데 당시 결론은 업종별 차등 적용의 효과는 부정적이라는 것이었다.

경영계는 그러나 업종별 차등 적용의 당위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는 거다.

◆지불능력과 생산성

경영계는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지불능력에 대한 고려 없는 최저임금 결정 제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격하게, 일률적으로 상승하는 최저임금 탓에 일부 업종에서 최저임금 수용성이 저하되고 고용 축소라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한다.

경영계는 우선 업주가 아르바이트보다 못한 소득을 올린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주로 영세·소상공 업계에서 매년 불합리하다고 주장하는 건데 류기정 경총 전무는 최근 최저임금위 회의에서 “직원에게 최저임금을 맞춰주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 직원을 줄이고 폐업까지 고민한다는 말이 많다”며 하나의 통계를 제시했다. 양경숙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자영업자(종합소득세 신고자 중 사업소득을 신고한 사람)의 연평균 소득은 2017년 2170만 원에서 2020년 2115만 원으로 줄었고 2021년에는 1952만 원까지 감소했다. 이를 월급으로 환산(월 30일, 209시간 기준)하면 163만 원으로 같은 해 최저임금 월급 약 182만 원보다 적다.

이 같은 업주들의 불만은 자연스럽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때문에 지불능력의 격차도 커졌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경총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숙박·음식업의 1인당 부가가치는 1860만 원으로 제조업(1억 2076만 원), 정보통신업(1억 829만 원)과 큰 격차를 보인다. 또 숙박·음식업의 최저임금 미달률은 40.2%에 달해 1.9%인 정보통신업과 비교해 38.3%p나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방법론적으로 업종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느냐는 의문이 남는데 경영계는 현재 수준의 최저임금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일부 업종부터 우선 추린 뒤 지속적인 데이터를 구축해 차등 지급 적용 범위를 늘려나가면 된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여당에선 최저임금을 지역별로도 차등 적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을(乙)과 을의 갈등 안돼

노동계는 더 이상의 소모적 논쟁은 안 된다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2017년 최저임금위 TF를 통해 심도 있게 논의했고 여기서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인데 왜 자꾸 이 의제를 꺼내 을(乙)끼리의 갈등을 부추기느냐는 거다.

노동계는 우선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해 적용하면 이른바 ‘낙인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더 적은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업종에 대해 구직자들이 취업을 꺼릴 수 있고 일할 의욕마저 꺾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최저임금이 업종별로 차등 적용되면 최저임금제도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최근 최저임금위 회의에서 “경총은 이미 우리 사회는 업종별 임금격차가 가장 크고 특히 숙박·음식업의 임금 수준은 가장 낮은 업종이라고 하는데 그런데도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것은 자영업자와 노동자의 빈곤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다. 지금도 외식업의 경우 최저임금만으로는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근거도, 합리성도 없는 업종별 구분 적용이 이뤄지면 그 업종은 저임금 업종으로 낙인찍혀 심각한 구인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박 부위원장은 이어 “경영계가 업종별 차등 적용을 주장하는 진짜 이유는 재벌·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인한 폐해를 저임금 노동자에게 전가시키고 최저임금 인상을 막기 위함”이라며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어려운 건 비정규직, 다단계하청, 플랫폼, 프리랜서를 비롯한 특수고용직 등으로 중층화된 노동시장의 구조에 기인하는데 이 같은 이중구조는 재벌·대기업의 이익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에 따른 골목상권 침체, 대기업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노동시장의 문제 등을 풀어 소기업·소상공인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 먼저라는 거다.

노동계는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은 경제구조의 문제다. 대기업 중심의 유통구조, 가맹점·대리점의 불공정 심화, 온라인 플랫폼 중심의 대기업 독과점, 경제활동인구의 축소로 인한 소비 감소, 이에 더해 공공요금 인상과 물가 인상, 고금리로 인한 부채상환 부담과 대출 축소 등이 맞물린 결과”라며 정부의 역할론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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