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기 없어서…” 보행자 있어도 주행
전문가, 차량 시속·횡단보도 설계 변화 필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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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없는 횡단보도가 교통안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보행자가 있어도 신호등이 없다는 이유로 주행해 보행자 보호 의무를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의 경우 현행법상 보행자가 없어도 무조건 정차해야 하지만 이를 모르는 운전자가 태반인 상황이다. 전문가는 차량 시속에 제한을 두고, 횡단보도 중앙 보행섬을 두는 등 도로 설계의 변화는 물론, 보행자 역시 무방비로 횡단보도에 나서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횡단 중 차량 대 보행자 교통사망사고는 2020년 22건이며 2021년 18건, 2022년 11건 등 모두 51건이다. 이 가운데 보행자 보호 의무 위반은 10건에 달한다. 보행자 보호 의무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지나고 있거나 통행하려고 할 때 운전자가 정지선에 일시정지해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지 않고, 위험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는 도로교통법 제27조에 명시된 것으로 특히 스쿨존의 경우 횡단보도에 사람이 없어도 무조건 멈춰야 한다.

그러나 횡단보도 위 보행자 안전을 위한 교통문화가 정착되기까지 갈 길이 멀다. 특히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한데 일부 운전자들이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한 채 달려 교통사고 위험이 크다. 20일 대전의 한 길목. 인근에 번화가가 있어 유동인구와 차량이 많아 복잡했다. 이런 환경에 더해 주변에 신호등마저 없어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서는 차들이 모두 지나가길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하얗게 노면표시된 횡단보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었다.

대전시민 A(29·여) 씨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늘 긴장하게 된다. 멈춰서 먼저 지나가길 기다려주는 차량도 있지만 대부분 보행자를 봐도 멈추지 않고 지나간다. 요즘은 이어폰을 사용하며 휴대전화를 만지며 건너는 사람들도 있어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또 노인은 동작이 느리고, 아이들은 잘 보이지 않을텐데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는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는 꾸준히 이어졌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21년 보행자 안전 및 교통사망사고 감소를 위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 차량이 일단 멈춰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 ‘2021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또 ‘우회전 일단 멈춤’을 골자로 한 개정된 도로교통법이 최근 시행 중이다.

전문가는 도로 설계, 차량 속도, 보행자의 안전 준수가 맞물려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병호 한국교통안전공단 박사는 “신호기를 설치하는 것보다는 도로의 구조적인 부분을 재설계하고, 차량 속도를 통제하면서 관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노인과 어린이는 한번에 횡단보도를 건너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 중앙 보행섬을 만들어 두고, 이에 맞춰 언제든 차량이 멈출 수 있도록 구간 속도를 30㎞로 낮춰야 한다”라며 “보행자 역시 보행 3원칙(서다·보다·걷다)을 준수해 차량이 진입할 시 손을 들어 신호를 주는 등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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