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등은 현행법서 예외인데
카페선 미숫가루를 ‘MSGR’로 표기
‘노년층 외국어 신문맹’ 형성 우려

외국어로만 표기된 간판이 난립하지만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행법에서 간판은 외국어뿐만 아니라 한글도 병행 표기해야 하지만 프랜차이즈 매장이나 특허청 상호 등록 등 예외조항이 있어 자치단체의 단속에 한계가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외국어 표기 간판은 물론 외국어로만 적힌 메뉴판까지 더해지면서 ‘노년층 외국어 신(新)문맹’을 양산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나온다.

25일 대전 서구의 한 번화가. 즐비한 가게만큼 화려한 간판이 뒤엉켰는데 우리말로 쓰인 간판 틈에서 영어와 일본어로만 표기된 간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음식점은 자신들이 내놓은 메뉴에 맞춰 간판부터 메뉴판까지 모두 일본어와 영어로 적어뒀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또 다른 번화가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가 다수 밀집한 이곳에서는 영어 상호를 매장 유리창 전체에 적어둔 곳도 있었다. 각 카페별 개성을 살린 간판부터 매장 내 메뉴판까지 모두 영어로 도배됐다. 매장의 분위기에 맞춰 우리말보다는 외국어로 간판을 달아야 입소문을 탈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대전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 A 씨는 “매장만의 고유한 분위기가 있어야 손님들이 많이 온다. 아무래도 운영자로서 매장을 개성 있게 표출하고 알릴 수 있는 게 우선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를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2조에 따르면 광고물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춰 한글로 표시해야 한다. 만약 외국어로 표시할 경우 한글과 함께 기록해야 한다. 이처럼 명확한 법적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법 시행령 제5조에는 4층 이하 건물에 설치되는 5㎡ 이하 간판은 허가 및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해 외국어나 난립하는 상황이다.

범람하는 외국어 간판 틈에서 최근 영어로만 쓰인 메뉴판도 등장해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한글이 전혀 없는 메뉴판에 불편함을 겪었다는 글이 게재됐다. 해당 게시글에 따르면 메뉴판에는 미숫가루가 ‘M.S.G.R’로 적혀있었다. 메뉴판에는 한글이 없어도 불법은 아니지만 외국어 간판을 비롯해 매장 내 모든 글자마저도 외국어로 쓰여 노년층 신문맹이 나오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가 적잖다.

결국 자치단체가 시행령에 따라 적극적으로 단속을 통해 외국어 남용을 막아야 하지만 단속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명확한 지침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대전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법 문구만 보면 외국어 표기 간판이 불법인 것은 맞으나 현장에서 단속할 때는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업종도 있고 상표 자체가 외국어로 표기되는 고유상표인 경우도 있어서다. 단속을 나서기는 하지만 외국어 간판만 한정해 단속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더 명확한 지침이 있어야 시민이 불편을 겪지 않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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